김병주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 큰 것이 좋은 것인가, 작은 것이 아름다운 것인가? 국토 면적으로 보면 구소련을 능가할 나라가 없었다. 해체 이후에도 러시아는 광활한 시베리아 덕에 여전히 넓은 국토를 보유한다. 사람 머리수로 따지면 13억 인구의 중국이 으뜸이다. 중경(重慶)을 포함하면 인구가 1억2000만명에 이르는 사천(四川)성 사람들의 자랑거리는 세계인구(약 63억명 측정)의 5분의 1이 중국인이고, 50분의 1이 자기 고향 사람이라는 얘기이다. 한술 더 떠서 이런 농담도 있다. 중국은 세계 어느 나라와 전쟁해도 이긴단다. 왜냐하면 전쟁이 나면 1억 명에게 군복을 입혀 전선에 투입해 항복하도록 유도하면 어느 나라도 그 많은 포로들을 감당할 수 없어 손을 들 테니까. 무엇보다 한국의 자랑은 경제다. 국내총생산 기준으로 11위권 안팎에 있다. 멕시코와 인도 사이에 끼어있다. 2004년 현재 1인당 국민소득(GNI)이 1만4162달러로 미국 3만9898달러, 일본 3만7251달러보다 낮지만 중국 1100달러(2003년)보다는 높다. 1인당 국민소득으로 따지면 최대 강국 미국을 앞지르는 산유국 등 소규모 국가들이 많다. 얼마전 포브스 글로벌 포럼에 후진타오 주석은 향후 15년내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 수준으로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약 3배쯤 끌어올리겠다는 말이다. 그때 한국 경제는 어디쯤 위치할까? 그것은 경제주체들, 특히 기업이 하기에 달려있다. 기업 경영자가 창의적 혁신에 힘쓰고, 노동자들의 손이 날렵하게 움직이고,정부가 경제흐름에 모래뿌리기 대신 기름치기를 머리 쓴다면 그때쯤 3만달러를 넘보지 말라는 법이 없다. 기업 규모의 문제를 잠시 생각해보자.경제가 잘 굴러가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적절히 배합돼 있어야 한다. 업종에 따라 규모의 경제가 다르기 때문에 적정 기업 규모에 차이가 생기게 마련이다. 시장에서 잘 팔리는 상품은 제품수명이 짧다. 독과점적 이익을 누리는 기업이 있어야 연구개발비를 지속적으로 투입하기가 유리한 반면, 그런 기업의 폐해도 있다. 모두 경제 원론 교과서에 나오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경제의 성장원동력은 여전히 내수부문보다 수출부문에서 나온다. 그런데 수출주력품목을 보면,자동차ㆍ휴대폰ㆍ반도체ㆍ조선ㆍ철강 등으로 대부분 민간 대기업 제품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인은 대기업 덕에 먹고 산다. 그러나 국민정서는 여전히 대기업은 '악(惡)'으로 본다. 이것은 지난날 대기업이 저지른 업보 탓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선진화를 위한 마지막 도약을 위해서는 국민의 이율배반적 기업관이 고쳐져야 한다. 얼마전 서울 유력지의 간부가 기명 칼럼에 대기업 우려론을 실었다. 경제 정치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그 막강한 영향력을 우려하는 글이었다. 읽고 나자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남았다. 요즘 팽배한 평준화 국민정서와 코드에 맞춰 대기업을 토막내자는 뜻이 아니고, 더구나 '보ㆍ혁' 다툼에서 보수 내부간 분쟁으로 전선이동이 아니었기 바란다. 인구 520여만명의 핀란드 기업 노키아는 세계굴지의 기업이다. 그곳 국내 경제에의 영향은 한국 대기업 어느 것보다도 크다. 삼성전자는 아직 멀었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의 반(反) 노키아 정서는 별로 없다. 정부의 기업 문어발 억제책도 좋고 공정거래 정책도 좋다. 그러나 우리 기업의 경쟁 상대를 고려해 보아야 한다. 국내외 시장에서 외국 대기업들을 경쟁자로 씨름해야 하는 국내기업들에 국내시장 점유율 등 낡은 잣대로 재단한 억지 옷을 입혀 조여야 하는가? 난쟁이 나라 '릴리풋'에서 활개치던 걸리버가 거인 나라 '브롭딩낵'에서 어떤 신세가 되었나? 국가나 기업이나 크기가 아니라 국민의 삶의 질에 대한 기여가 핵심이다. 시장경제는 국내외 경쟁을 뜻한다. 경쟁에 이길 수 있는 한국기업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