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비리혐의로 국회의원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김희선·한나라당 김충환 의원은 '검은 돈'을 받은 혐의로 며칠 전 검찰조사를 받았다. 앞서 한나라당 박혁규 의원은 아파트 건축 인허가 청탁과 함께 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밖에도 상당수 의원들이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검찰이 사정의 '칼날'을 다시 세우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17대 국회는 지난해 '차떼기'로 상징되는 정경유착 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깨끗한 정치'를 다짐하며 출범했다. 여야는 총선 전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계법을 대폭 개정,'고비용' 정치구조에 메스를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권 부패는 여전히 청산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투명사회협약'이 체결되면서 정치권에서도 부패와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협약을 뒷받침하기 위한 법제화 논의도 활발하다. 열린우리당 김한길·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은 고위공직자의 재산공개시 재산형성 과정을 소명토록 하는 법안을 내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은 국회의원의 소관 상임위원회 직무관련 영리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정부도 '공기업 부패방지를 위한 개선방안'을 내놓는 등 후속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9일 협약체결식에서 "공직부패수사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을 국무위원까지 확대하는 등 공직부패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여야가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주식 백지신탁제도'가 논란 끝에 흐지부지된 전례가 있기 때문.최근에는 정치관계법을 다시 손대려는 움직임이 정치권 곳곳에서 감지되기도 했다. 기업의 정치자금 기부 및 후원금 모금행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현행법이 정치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해도 이런 움직임은 국민의 여망과는 동떨어진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민영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은 "제도 몇가지를 고치는 것보다 정치인들이 기존의 제도를 충실히 지키겠다는 의식부터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협약의 실효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정치권의 자정노력은 자칫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학)는 "사회협약은 구속력이 없는 선언적 의미를 가질 뿐"이라며 "실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안받고 못쓰게 하는 것만이 정치권 부패를 뿌리뽑는 능사는 아니다"며 "개인기부 한도 등의 금액 자체보다는 얼마를 주고 얼마를 받았는지 돈흐름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