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전자상가 지하에서 2평짜리 가게를 운영하는 문영식씨(41)는 한때 서울 시내 거리의 노점상이었다.


98년 대기업에서 명예퇴직을 한후 2년간 노점을 하면서 그는 신뢰영업 등 나름의 원칙을 만들어 장사의 원리를 깨우쳤다.


이를 기반으로 인터넷으로 사업을 확장,각종 아이디어 제품을 인터넷과 좌판을 통해 판매했다.


노점에서 모은 자금으로 그는 2000년 용산전자상가에 꿈에 그리던 점포까지 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는 시너지효과 덕분에 문 사장은 요즘 불황을 잊고 산다.


◆암담한 명예퇴직


98년 5월30일.문 사장과 그의 동생은 10년 안팎 몸담은 기아자동차 정문을 나섰다.


나란히 명예퇴직 대열에 낀 것."아는 것이라곤 자동차 부품밖에 없어 정말 앞이 캄캄했어요.


결국 노점상밖에 없다고 판단했죠."


동료들의 도움으로 좌판은 마련했지만 무얼 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각종 중소기업 제품 전시회를 뻔질나게 돌아다니다 발견한 게 자동차 키를 복제하는 기계.차 열쇠를 위에 넣고 아래에 플라스틱 카드를 넣어 버튼만 누르면 20초 만에 비상키를 만들어 내는 제품이었다.


제조회사를 방문,제품 지식과 판매방법을 전수받은 후 복제기계와 키 재료 등 1백50만원어치를 샀다.


판매 장소는 우선 자동차가 많은 곳을 택했다.


첫 판매지는 기아차 후문 앞.퇴근 시간에 맞춰 자리를 펼쳤다.


첫날 두 시간 동안 겨우 4개 팔았다.


그나마 2개는 기술 미숙으로 망가져 버려야 했다.


"판매 상품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했고 기계작동법도 서툴렀습니다.


더 큰 문제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었어요.


그래서 식구들이 잠든 한밤중에 일어나 상품 설명 연습을 반복했습니다."


변변치 않은 수입으로 고생하던 중 서울 강남 탄천 공터에 중소기업을 위한 벼룩시장이 열렸다.


외환위기 초기라 시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새벽부터 줄을 서서 오전 9시께 번호표를 받은 문 사장 형제는 비상카드키와 전동칫솔 두 제품으로 하루 동안 80만원어치를 팔았다.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상품 두 개로 희망의 터널을 발견한 것이지요."


◆거리에 좌판을 깔고


주말과 저녁시간을 이용하던 좌판 판매는 정식 퇴직 후 전일근무제로 바뀌었다.


맨 처음 착수한 일은 판매지역 목록 작성.광명과 아산의 기아차 후문,인천 대우차,안양 N페인트 주차장,서울의 J일보 주차장,용인 에버랜드 등."직장인 대상 장사를 하기에 최고란 소문을 듣고 서소문 J일보 주차장 인근을 어슬렁거렸지요.


그랬더니 대뜸 주변 노점상들이 딴지를 걸더라고요.


점심시간을 이용해 슬쩍 좌판을 폈더니 당장 경비원이 달려나오는 거예요." 경비원과 주변 노점상을 사귀는 데는 한 달 가까이 소요됐다.


낮은 자세와 호소하는 말투가 이 과정에서 필수적이란 걸 문 사장은 깨달았다.


하지만 언제나 이동 노점상을 할 수는 없었다.


고정 노점상으로 전환하기 위해 용산전자상가에 자리를 물색할 때였다.


슬그머니 좌판을 펴는데 건장한 청년들이 다가왔다.


"아저씨,여기서 장사하면 안돼요." 알고보니 노점의 메카인 이곳은 일종의 '조직'이 관리하고 있었다.


조직의 중간간부에게 사정해 마침내 서울 용산전자상가 15동 앞 보도 위에 자리를 잡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전 9시면 문 사장은 나타났다.


그 즈음 용산전자상가에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벼룩시장이 열렸다.


참가 상인은 18동과 19동 상인들이었다.


"상우회로 달려가 자리를 달라고 매달렸죠.어이없어 하더군요.


그럴수록 오기가 생기는 거예요.


한 달간 매일 찾아간 끝에 겨우 자리를 얻었어요."


이 때부터 문 사장 통장에 잔액이 늘어갔다.


노점과 벼룩시장 자리 두 곳의 판매대에 영업을 보조할 인원을 채용했다.


상품도 많이 늘었다.


특히 다용도 충전기는 전동칫솔 못지않은 인기를 모았다.


◆인터넷 판매와 점포판매를 병행


영업이 안정되자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다가왔다.


2000년 들어 국민PC 보급은 노점 물건을 집에서도 팔 수 있는 전기가 됐다.


그는 학원을 다니며 속성으로 컴퓨터를 배웠다.


"생전 처음 접하는 도스,엑셀,포토숍,한글 프로그램을 동시에 배웠습니다.


형벌과 같았지요."


고생 끝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인터넷거래가 늘어나자 문 사장은 2001년 3월 인터넷사업부 '위드 프랜즈(with friends)'를 발족하고 사이버 점포(www.buy7942.com)를 열었다.


프로그래머,웹 디자이너,포장·배송 담당 등 직원도 3명 채용했다.


그 즈음 용산전자상가 지하에 어엿한 매장도 냈다.


점포에 '친구사이'란 간판을 걸던 날,문 사장 형제는 부둥켜안았다.


구청 직원 단속을 피해 이 거리,저 골목을 떠돌던 아픈 기억들이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었다.


대박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한 수입상이 팔아달라고 의뢰한 'AB 슬라이드'란 운동기구가 불티나게 팔린 것."4개월 동안 퇴근을 잊고 전 직원이 매달렸지요.


날개 돋친 듯 팔리더라고요.


아쉽게도 언론에 이 제품으로 다친 사람이 보도되면서 인기가 시들해져 버렸어요."


문 사장은 요즘 온라인 판매경로를 넓히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컴맹 넷맹이던 제가 인터넷을 통해 돈을 벌고 있으니 재미있는 일이지요.


좀 더 여유가 생기면 대한민국 영업전문학교를 세워 제 경험을 전파하고 싶습니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