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릉,기~잉,털커덕" 지난달 15일 밤 부산항 신선대부두.겨울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속에서 미국으로 가는 현대상선의 컨테이너선 글로리호에 화물을 싣는 작업이 자정무렵까지 계속됐다. 깊은 밤의 고요속에 화물을 싣는 겐추리 크레인(화물을 싣고내리는 기계장치)의 소리가 더욱 우렁차다. 당초 오후 4시에 출발하기로 한 글로리호의 화물작업이 이처럼 지체된 것은 항만이 붐벼 배 대는 시간이 늦어진 탓이다. 최근 부산항은 심한 "선박체증"에 시달리고 있다. 항만은 좁은데 물건을 실어 나르는 배는 많다 보니 시도때도 없이 병목현상이 생긴다. 제때 배를 대지 못하는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크레인 같은 항만 시설도 부족한 편이다. 통산 항만에서 배 하나에 붙는 크레인은 평균 3대.하지만 부산항의 경우 평균 2.7대에 불과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에서는 배당 4개가 넘는 크레인을 붙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번에 20피트짜리 컨테이너를 1만개씩 싣는 대형선박이 일반화되고 있지만 부산항의 여건은 영 열악한 형편이다. 선석마다 운영사가 다르다 보니 배가 없는 선석의 크레인을 끌어다 쓰기는 쉽지 않다. 항만 배후부지도 비좁기만 하다. 항만에 화물을 보관했다가 바로 배에 실어야 운송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부산항의 경우 70% 가까운 물량을 트럭에 실어 시내 곳곳에 퍼져있는 컨테이너 창고로 이동했다가 선적할때 다시 싣고 와야 한다. 부산항만공사의 강부원 부장은 "지금처럼 시설이 노후하고 부족한 형편에서는 이 정도 물동량이나마 제대로 처리하는 게 기적에 가까울 정도"라며 "시급히 부산 신항이 완공돼야 이같은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부산항이 그동안 동북아시아 거점항 구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어부지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베 대지진 이후 주요 선사들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기항지를 바꿨고 중국 항만에서 미국 일본 유럽 등으로 가는 화물을 다 처리하지 못한 덕분에 그 물량이 부산을 거쳐갔던 것.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같은 대외환경이 앞으로도 부산에 유리하게 돌아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우리라고 말한다. 근 2년새 파업과 태풍으로 인한 피해로 많은 해운사들이 부산을 기항지에서 제외시켰고 중국과 일본은 대규모 투자를 쏟아부어 항만을 확충하며 부산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올해말 개항하는 상하이의 대소양산항을 비롯 다리엔항 칭다오항 등은 부산의 환적화물을 상당부분 앗아갈 것으로 보인다. 해운업계는 3년내에 부산항을 허브 항만으로 끌어올려야만 한다고 입을 모은다. 2008년께면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 주요 항만의 처리 물동량이 부산을 충분히 위협할 수 있는 수준까지 늘어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올 연말 문여는 부산 신항이 급부상하는 중국 항만을 제압할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막판 유치작업에 한창인 미쓰이물산 셈콥같은 글로벌 물류기업을 유치하게 되면 부산항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허브 항만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부산항이 허브항만으로 발돋움하기까지는 만만찮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외국 물류회사를 끌어들이기 위해 조성한 항만 배후부지의 경우 정지작업조차 제대로 안돼 있다는 불만이 빗발치고 있다. 부산항의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는 거미줄 같은 피더망(지역 군소항만을 연결 하는 배편)도 중소 해운선사의 몰락으로 언제 사라질 지 모를 처지다. 부산신항과 구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신항이 개항한 후 한참뒤에야 완공될 예정이다. 부산의 한 항만운영사 관계자는 "시설 이용이 편리하지 않고 서비스도 뒤떨어진다면 외국기업이 부산에 머물 이유가 없다"며 "해외 물류기업을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인 뒷받침부터 지원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산=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