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1월 한일협정문서를 공개키로 한 것은 국내외 여건을 감안할 때 상당한 부담을 감수한 `큰 결정'으로 보인다. 일단 문서가 공개되면 당시 회담이 졸속, 굴욕적이었다는 이유로 재협상과 보상요구가 거세질 뿐더러 일본과 외교 마찰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일협상 당시 일본측은 일제강점시 한국인 피해자 실태를 개별적으로 조사해개별 보상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으나 한국측이 배상금을 일괄적으로 받아 일괄 처리하겠다고 밝히는 바람에 개인청구권이 차단됐을 정도로 불철저한 회담이었다는 점에서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내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돼왔다. 또 정부가 한일협정 체결 이후 60년대에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상업차관3억달러 등 모두 8억달러를 일본 측으로부터 건네받고도 70년대 중반에 극소수에게만 보상을 실시한 바 있어 징용.징병 피해자의 재보상 요구도 상존해왔다. 정부는 당시 징용사망자 8천552명에게 1인당 30만원, 일본 정부 발행의 유가증권 9천700여건에 대해 1엔당 30원으로 환산해 지급한 바 있다. 그러나 관련단체에 따르면 일제 징용.징병 피해자는 현재 100만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한일협정 문서를 공개키로 한 데는 지난 2월 서울 행정법원이 공개를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준 게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조만간 있을 상급심에서도 같은 판결이 예상돼, 정부는 이왕 공개할 거면`자율적'으로 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이수혁(李秀赫)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28일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행정의 투명성 증대 차원에서 재판 결과와 관계없이 공개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 2005년이 을사늑약 100주년, 광복 60주년, 한일협정 체결 40 주년이라는 역사적으로 상징적 의미가 있는 해라는 점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올들어 국내 과거사 문제 청산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온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대(對) 일본 문제에 대해서는 저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국내 일각의 여론을 의식한 데 따른 게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일단 1965년 한일 청구권 관련 협정의 주요협상 결과 등에 관한 보고서,훈령, 전문, 관계기관 간 공문, 한일간 회의록 등 문서철 5권 등 총 1천200여쪽을먼저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이 문서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다. 이 문서는 지난 2월 서울 행정법원의 공개 판결후 정부측 항소로 현재 서울 고등법원에 계류중인 것으로, 내년 1월17일부터 서울 서초동 외교안보연구원에서 마이크로 필름 형태로 일반인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정부는 5권 이외의 문서에 대해 국익보호와 사생활 인권 문제를 면밀히 검토하고 일본과의 관계를 감안하되, 공개 대상은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문서 공개후 파장 수습을 위해 조만간 국무총리실, 외교통상부, 행정자치부, 보건복지부, 재정경제부 등의 관련 부처가 참여하는 `한일협상 문서공개 대책기획단'을 발족할 예정이다. 대책기획단은 문서공개 이후의 피해구제 방안 및 입법체계, 소요 재원 마련 등에 주력하게 된다. 정부는 그간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6개 관련부처 차관들로 특별팀을 구성해 문서공개시 예상되는 파장과 대책 등에 대해 실무협의를 해왔다. 특히 보상 문제와 관련해 정부는 `원칙적으로 보상은 이미 끝났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당시 보상이 극소수에 한정됐고 일본으로부터 건네진 자금이 포항제철 설립, 고속도로 건설 등 경제재건에 쓰였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정부의 책임부담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피해자에 대한 생계지원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일제 강제연행 피해자단체인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최근 국회의원들을 설득해 일제 때 군인,군속,노무자,여성 근로정신대, 일본군 위안부 등으로 동원됐던 사람과 유족들의 생활 지원을 골자로 하는 `태평양전쟁희생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안'을 마련, 여야의원 117명 발의로 지난 6월 국회에 발의해 놓은 상태다. 이럴 경우 일본 정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한일수교협상이 외교적으로 `하자가 없는' 회담이었다고는 하지만 일본이 징용.징병 문제와 관련해 도덕적, 인도적으로 여전히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한일협정 문서 공개에 대해 일본 측은 표면적으로는 `한국의 주권사항이기 때문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으나, 속내는 문서 공개후 재협상 및 보상 요구와 향후 예정된 대북 수교협상에 악영향을 이유로 난색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lye@yna.co.kr kjihn@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 유.인교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