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지난주 미국 재무장관과 연방중앙은행(FRB) 총재가 유럽에서 환율 관련 발언으로 연타를 날려 시장이 출렁거렸다. 인플레이션의 지표가 되는 금값은 16년만에 최고치로 오르고 달러 가치는 급락했다. 정책입안자들이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는 발언을 하면,당연히 투자가들은 다른 통화로 눈을 돌리게 돼 있다. 파운드화 가치가 붕괴됐던 1970년대 영국에서 그랬고,1987년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재무장관 존 스노는 지금 몇달째 통화 약세가 재계에 이롭다는 낡아빠진 이론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일찍이 폐기됐어야 마땅하다. 재무장관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는지는 몰라도,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장은 스노 장관의 약달러 입장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이 지난주 프랑크푸르트 유럽금융인회의에서 달러가치가 회복될 것 같지 않다고 하자,다우지수는 급락하고 채권값도 하락했다. 사실 그린스펀은 대표적인 달러가치 옹호자다. 따라서 달러가치가 회복되지 않을 것 같다는 그린스펀의 말은 달러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모른척'하겠다는 것이다. 달러표시 유가증권은 오랫동안 외국 투자가들의 안전한 투자대상이었다. 미국은 거액의 무역적자가 쌓일 때까지 외국 상품을 사들이고,외국은 이렇게 해서 번 돈을 미국에 다시 빌려줬다. 지속 가능하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장사다. 그러나 달러가치가 떨어지면서 외국 투자가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 유로 가치가 더 오르면 달러보다 유로화에 투자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이 유로화의 구매력을 보호한다는 한결같은 정책을 고수한 반면 실업문제를 방치할 수 없었던 FRB는 입장이 왔다갔다 한 것도 유로화의 안전성을 상대적으로 부각시켰다. FRB의 이런 태도는 결국 유동성 과다와 인플레이션의 위기를 가져왔다. 유로화 가치가 80센트였을 때나 1달러30센트인 지금이나 유럽 경제가 똑같이 지지부진하듯,지금의 약달러는 미국 경제에 도움이 안 되고 있다. 오히려 약달러 때문에 달러 환산 유가가 유로 환산 유가보다 더 오르는 등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달러 가치가 지금보다 더 떨어지고 미국으로부터의 자금이탈이 현재의 '가벼운' 수준을 넘어선다면 미국 경제는 본격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다. 원자재와 공산품 가격이 올라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증시와 채권시장도 냉각될 것이다. 경제학에 화폐가 싸지면 결과적으로 무역적자가 해소된다는 'J커브 효과'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 효과는 보장이 안된다. 무역적자를 해결하는 데는 FRB가 연방기금금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끌어올려 전세계에 강 달러 지지 신호를 보내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금리인상이 미국 경제 회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하지만,사실 경제란 모기지같은 장기채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되는 것이므로 이런 우려는 크게 할 필요가 없다. 일각에선 미국의 두 경제 수장간에 알력이 있다는 말도 있다. 어쩌면 그린스펀은 스노에게,일국의 재무장관이 화폐 절하를 통한 경제 부양을 고집하면 국가 경제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가를 알리기 위한 경고성 발언을 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 결과는 우리가 지난주 경험한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 될 것이다. 이제 유일하게 기댈 곳은 그린스펀 의장뿐이다. FRB가 달러가치 추가 하락에 대해 뭔가 진지한 조치를 취해주기를 기대한다. ---------------------------------------------------------------------------- ◆이 글은 조지 멜런 월스트리트저널 부국장의 23일자 칼럼을 정리한 것입니다. 정리=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