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17대 국회 첫 정기국회 초반 의욕적인 활동을 펼쳤으나, 주요 국정현안에 대한 당론확정 과정에서 혼선을 거듭하는바람에 국민의 혼란을 가중하고 여론의 비판을 자초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야 지도부는 23일 "정기국회 초반 활동이 나름대로 성과가 적지 않았다"며 긍정 평가했으나, 국가보안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내부 혼선과 그에 따른 개혁 시간표의 지연에 대한 자성론과 지도부의 성찰을 촉구하는 소장파 의원들의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우리당은 국보법 폐지후 대안에 대한 당론 확정 과정에서의 갈등과 혼선, 개혁과제 추진 일정표의 지연 등이 문제로 지적됐고, 한나라당은 여당의 친일진상규명법개정 추진 등 발빠른 대안제시로 저지하는 데는 성과를 거뒀으나 행정수도 이전과국보법 문제를 둘러싼 내부 이견이 심화되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등 군소정당들은 여야의 격돌에 묻혀 정책현안에 있어서독자적인 목소리를 반영시키는 데 미흡했고, 캐스팅보트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열린우리당 = 우리당은 정기국회 초반 최대 쟁점이 됐던 국가보안법 폐지를놓고 당내 이념 성향에 따른 이견과 갈등을 드러냈고, 이를 통합.조정하는 리더십의부재가 문제로 지적됐다. 우리당은 당초 23일 정책의총에서 국보법 폐지후 형법보완 또는 보완입법 등 보안대책의 방향을 확정하려 했으나, 추석 연휴 이후로 당론 결정시기를 미뤘다. 이는 당내 초.재선을 중심으로 다수 의원들이 형법보완을 선호하고 있는 가운데원내지도부가 보완입법쪽에 무게를 두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일부 정책조정위원장등이 국보법 개정론자들이 주축이 된 `안정적개혁을 위한 의원모임(안개모)'에 참여한 것 등이 혼선의 단초를 제공했다. 친일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의 경우 발효전 개정을 공언했으나, 한나라당이 대안을 제시하면서 강력 저지에 나서자 내달 23일 국정감사가 끝난 이후로 개정작업을연기했고, 연기금 주식투자 허용을 위한 기금관리기본법 개정도 야당의 우보(牛步)전술에 말려 내달로 처리를 미뤘다. 그러나 우리당 지도부는 지난 15일 본회의에서 사모펀드(PEF) 도입을 골자로 한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을 처리했고 이날 본회의에서 특소세법 개정안과 재래시장육성법 등을 처리할 예정인 점을 강조하면서 민생경제 부문에서의 성과를 강조했다. 또 국보법 폐지와 언론개혁법, 과거사법, 교육개혁 관련법 등에 대한 당내 논의도 충실하게 진행중임을 강조하면서 당 안팎의 `리더십 부재' 비판을 반박했다.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총에서 "정기국회초반 우리당은 계획했던 것들을 진행시키고 성과를 얻었으며, 경제개혁 법안 등도착착 진행돼서 국감이 끝나면 처리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며 "정기국회가 끝날때쯤이면 목표로 한 개혁입법을 완수하거나 결정적 기초를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기국회 활동을 놓고 개혁에 대한 기대가 높은 지지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우려가 있고 개혁적 언론들도 우리당의 개혁이 후퇴하는 하는게 아니냐, 전략부재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갖고 있다"며 "그러나 이는 우리당의 개혁에 대한 국민의기대가 크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며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혁을 둘러싸고 당내에 상당한 혼선이 있는 것처럼 비쳐지는데 치열한논쟁은 권장할 일이지만 질서있게 토론이 돼야 한다"며 의원들의 협조를 당부하고 "이제 (정기국회가) 80일도 남지 않았는데 도와주시기를 지지자 등에게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보법 폐지에 미온적이던 한나라당이 박근혜(朴槿惠) 대표를 통해 `정부참칭' 삭제와 명칭변경을 말하는 등 전향적으로 변했다"며 "우리당이 변화시켰다고본다"며 박 대표의 국보법 발언을 `여당의 성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보법 폐지를 주도해온 임종석(任鍾晳)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국보법 폐지후 형법보안이 사실상 다수당론이고 국민여론도 폐지에 공감하는 쪽으로변하고 있으나, 지도부가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애매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개혁주도력을 약화시키고 있음을 자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육탄저지(공정거래법)를 통해 다수여당안의 국회 본회의 일방상정을 막는데 성공했다. 뿐만아니라 친일문제를 제외한 과거사 규명에 있어선 북한정권 및 좌익세력의활동도 조사대상에 포함시킨 `현대사정리기본법'을 당론으로 마련, 여당보다 앞서국회에 제출하는 등 `대안(代案) 투쟁'을 통해 역공에 나서기도 했다. 정기국회 초반전에선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 듯했다. 하지만 국보법 개폐와 수도이전 논란 대응에 있어선 국민여론 눈치보기와 정치적 계산에 휘말려 좌충우돌, 당론조차 명확히 정하지 못하는 등 한계를 드러냈다. 이로 인해 정국의 한 축인 야당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고, 당 지도부의리더십은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 국보법 개폐논란과 관련, 한나라당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당의 폐지 주장보다폐지반대 주장이 높게 나타나면서 여론전에선 유리한 고지를 장악했다. 그러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국보법 폐지 주장에 맞서 "국보법 폐지반대에모든 것을 걸겠다"고 선언했던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잠정적으로 정한 당론과 소신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발언을 하면서 당내 논란이 심화됐다. 박 대표가 제2조 정부참칭 조항 삭제 및 국보법 명칭 변경을 언급했다가 다시한발짝 빼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개혁성향의 소장파 의원들은 정부참칭 삭제 및 국보법 명칭 변경을 적극 주장했고 영남권 보수 성향의 의원들은 이에 강력 반발했다. 수도이전 당론 논의과정은 한나라당으로선 최악의 모습이었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행정수도 이전 반대입장을 밝혔다가 작년 말 다수당 시절국회에서 `행정수도건설 추진법'을 통과시킨 바 있는 한나라당은 17대 국회 들어 박대표가 법안 졸속처리를 사과하고 신중한 당론결정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여당의 이전 계획이 발표된 후 장기간 준비 끝에 22일 의총에서 당론을 결정한 뒤 박 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당의 입장과 대안을 제시할 예정이었으나 의견이 엇갈려 천도수준의 수도이전에 반대한다는 원칙적 입장만 결정했을 뿐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수도이전에 반대하는 수도권과 이전을 촉구하는 충청권 민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당 정책위는 교육.과학관련 부서 부분이전안과 공주.연기 행정특별시 법적 지위 부여안을 제시했으나 다수 의원들로부터 "기회주의적 입장"이라는 등 비판을 받았다. 특히 이 과정에 박 대표도 대안내용에 관해 의총 전날에야 보고를 받고, 함께대안을 준비해온 `수도이전반대특위' 위원들조차 최종 대안마련 과정에서 배제되는등 당내 의사결정 프로세스에 커다란 허점을 보여줬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결국 정기국회 초반 여당의 개혁입법안 돌진에 맞서 방어선을 구축하는데는 성공했으나, 개별 전투에서 `적전분열' 양상을 보이면서 승산이 있었던 전투도 놓친 형국이 되고 말았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 김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