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19일 전격적으로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에게 물려주고 퇴진한데 대해 상하이(上海) 시민들은 착잡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해방일보(解放日報)나 문회보(文匯報), 상하이TV 등 대표적인 언론들의 보도내용이야 베이징(北京) 매체들과 별반 다를게 없이 공산당 제16기 중앙위원회 제4차전체회의(16기 4중전회)의 결정사항을 전하고 있지만 그 행간을 읽는 상하이 시민들의 마음은 복잡한 듯 했다. 잘 알다시피 장 전 주석은 이른바 `상하이방'의 총수이다. 지난 15년간 최고실권자로 군림해온 장쩌민을 받쳐준 권력의 고향이 바로 상하이다. 태어난 고향은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지만 장쩌민은 상하이 자오퉁(交通)대학 전기과를 1947년 졸업하고 상하이 식품.비누공장에서 근무하는 등 젊은 시절을대부분 이곳에서 보냈다. 특히 1985년부터 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로 중앙 정치무대로 화려하게 나서기전까지 상하이시장과 당서기를 지내며 오늘날 상하이의 기반을 다졌다. 그런만큼 상하이 곳곳에는 장쩌민의 흔적이 적지않다. 세계속의 중국을 상징하는 상하이 푸둥(浦東) 쓰지(世紀)대도를 사이에 두고 늘어선 초고층 건물 사이사이마다 장쩌민의 손때가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그런 장쩌민이기에 그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는 상하이 시민들은 일단 섭섭한기색을 보였다. 이런 반응은 젊은층보다는 중장년층에게서 더 두드러졌다. 50대 초반의 상하이시 공무원은 "누가 뭐래도 장쩌민은 중국의 개혁ㆍ개방을 지난 이끌어낸 위대한 지도자"라면서 "15년전 그가 등장하기 전만해도 오늘의 중국이 현실화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이 누가 있었느냐"고 말했다. 그는 장 전 주석을 `하오하오(好好) 선생'이라고 불렀다. 이 호칭은 어떤 일이든 웃음을 잃지않고 처리하면서, 누구에게나 `하오(좋다), 하오'를 연발한 장쩌민의애칭이다. 특히 장쩌민의 퇴진을 안타까워하는 상하이 시민들 사이에서는 최근 불거진 후진타오 주석과 상하이방과의 갈등설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장 전 주석이 모든 것을 물려준 후진타오 주석과 무슨 갈등이 있겠느냐"고 애써 무시하려는 기색이었다. 후 주석은 7월말 전격적으로 상하이를 방문, `중국 현대화를 이끄는 중심'으로상하이를 치켜세웠다. 당시 그의 상하이행은 장쩌민 계열과의 권력암투설이 일부 언론에 나도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큰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젊은 층들의 반응은 뉘앙스가 사뭇 달랐다. 역사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듯 장쩌민의 퇴진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자오퉁 대학 학생인 J군은 "젊은 지도자들이 새로운 중국을 개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 "권력에 더이상 집착하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장 전 주석을 `늙은 노파'라고 부르기도 했다. 오히려 물러날 때 깨끗하게 퇴진한주롱지(朱鎔基) 전총리가 이들에게 더욱 존경받는 듯했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도 장쩌민이 퇴진이후 상하이를 방문하면 환영할 것이라고말했다. 어쨌든 오늘의 중국을 만들어낸 그의 공로를 역사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데는 이론이 없기 때문이다. 장 전주석은 권력의 중심부에 있을 때에도 1년에 몇차례씩 상하이를 방문하곤했다. 상하이 시내에는 `장쩌민의 별장'이 있어, 보통 주변 경비가 삼엄해지면 시민들은 "그가 왔군"하고는 분위기를 대번에 알아채린다.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서서히사라지는 장쩌민이 보다 많은 `자유로운 시간'을 상하이에서 보낼 날이 온 듯하다. (상하이=연합뉴스) 이우탁 특파원 lw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