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 박종환, 2002년 히딩크 그리고 2004년에는 김호곤.'

한국올림픽축구대표팀의 수장인 김호곤 감독이 2004아테네올림픽에서 한국의 8강을 견인,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이 올림픽에서 8강에 오른 것이 조별리그 시스템상 이번이 사상 처음이어서 김 감독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것.

지옥과 천당을 오간 한국의 기적같은 '8강드라마'를 연출한 김 감독은 때론 친근하게, 때로는 엄하게 선수들을 다스리고 미드필드의 빠른 패스와 좌우 측면 돌파로 골문 공략을 주문하면서 수비조직력을 중시하는 스타일.

그가 이 기회에 올림픽팀의 준결승행도 이끈다면 한국은 세계청소년선수권('83멕시코대회), 월드컵(2002한일월드컵)을 포함해 세계 3대 주요 대회에서 모두 4강진입을 달성하게 된다.

한국축구는 한일월드컵에서 4강의 기적을 일구면서 세계 중심으로 진입하는 듯 했지만 부산아시안게임에서 3위로 부진한 뒤 추락을 거듭했고 이 과정에서 각급 대표팀 감독들도 차례로 고개를 떨궜던 것이 사실.

17세 청소년대표팀의 윤덕여 감독은 세계청소년선수권 조별리그에서 탈락, 말을 잃었고 20세팀의 지휘봉을 잡았던 박성화 A팀 수석코치도 세계선수권 16강에서 일본에 패하면서 고배를 마신데 이어 '오만쇼크'와 '몰디브망신'의 중심에 섰던 움베르투 코엘류 성인대표팀 감독은 중도에 옷을 벗고 말았다.

하지만 김 감독은 '죽음의 조'라는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에서 6전 전승을 지휘,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물론 지난해 1월 남아공 4개국대회에서 1년8개월간 대표팀을 이끄는 과정에서 프로구단들과의 차출 갈등, 와일드카드 선발에서의 잡음 등으로 얼굴을 붉힌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이 모든 난관을 뚫고 한국축구사의 새역사를 쓴 것이다.

김 감독은 지난 2002년 11월 올림픽팀 사령탑으로 선임될 당시 열혈팬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었다.

'86멕시코월드컵, '88서울올림픽, '92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코치로 김정남, 김삼락 감독을 보좌하는 등 지도자 경험을 풍부하게 쌓았지만 부산 아이콘스 사령탑 시절 변변한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국가대표 주장 등 선수로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지난 87년 소위 '김종부스카우트 파동'으로 울산 현대 코치에서 물러났고 98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치러졌던 올림픽대표팀 감독 경선에서 후배 허정무 감독에게 밀리는 등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한번 주어진 기회를 '인생역전'의 계기로 삼으려는 듯 입을 악물었고 결국 올림픽 8강의 성적을 내 뜻을 이뤘다.

'늦깎이' 성공일기를 써 나가고 있는 김 감독이 이후에도 승승장구, 유로2004의히어로 오토 레하겔 그리스 감독처럼 세계적 명장의 반열까지 노릴지 주목된다.

(아테네=연합뉴스) 특별취재단 jc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