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 9/11'(마이클 무어 감독)이 개봉됐다.

'백악관을 겨냥한 정치적 수류탄'이라는 평처럼 영화는 시종일관 부시 대통령의 무능을 꼬집고 비아냥댄다.

낚시하고 골프치는 모습 아래 '9·11 발생 전 42%의 시간을 여가활동으로 보냈다'는 자막을 띄우고,9·11사태를 보고받는 순간의 멍한 모습을 길게 비춘다.

9·11테러 배후로 지목받는 오사마 빈 라덴 가문과의 진했던 유착관계를 드러내고 심지어 9·11 이후 빈 라덴 일가가 미국을 빠져나가도록 방치했다고 전한다.

영화는 이어 '애국법'제정으로 매사 불안에 떠는 사람들,멋도 모르고 참전했다 죽고 다친 병사의 참상,가족과 터전을 잃은 이라크인들의 분노를 보여준다.

부시 부자가 관여했던 칼라일 그룹은 9·11테러 후 군장비 판매 급증과 뉴욕 증시 상장으로 수십억달러를 챙겼고,명분도 증거도 없는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으로 가난한 집 청년들은 사지에 내몰린 반면 군수업체와 석유사들은 떼돈을 벌고 상하원 의원중 자식을 이라크에 보낸 사람은 단 한명뿐이라는 사실도 고발한다.

무어는 콜럼바인고교 총기난사 사건을 다룬 '볼링 포 콜럼바인'으로 유명한 인물.'화씨 911'은 독서가 금지된 미래사회에서 책을 없애려 소방관이 불을 지르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SF작 '화씨 451'에서 따온 것이다.

무어는 "화씨 451이 책 타는 온도라면 화씨 911(섭씨 488.3도)은 진실이 타는 온도"라고 설명했다.

다큐멘터리인 만큼 특별히 새로운 건 없다.

뉴스와 직접 촬영한 장면을 잘 엮고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감독 자신이 삽입한 "어쭈,그래"식의 내레이션은 때로 통쾌하지만 영화는 어디까지나 미국인의 시각에서 미국내 문제를 다룬다.

게다가 정치색이 너무 짙다.

9·11 이후 모든 상황이 2000년 대선을 잘못 치른 결과니 이번엔 제대로 하라는 노골적 메시지는 영상정치 시대의 단면인 듯해 입맛이 영 쓰다.

그래도 보는 동안과 끝난 뒤 내내 가슴이 묵직한 건 전쟁이 보통사람의 삶에 미치는 아픔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을 이처럼 대놓고 비난한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은 부수적인 것이고.국내 개봉일에 9·11테러범들이 공항검색대를 통과하는 사진이 나온 건 또 무슨 연유인지.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