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별세한 고형곤(高亨坤) 박사는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온 인생역정으로도 유명하지만, 세간에는 아들인 고 건(高 建) 전 국무총리와의 `돈독한' 부자관계로 더 자주 회자됐다. 고 전총리가 공직에 있으면서 원칙으로 삼았던 `남의 돈을 받지 말라', `줄서지 말라', `술 잘 먹는다는 소리 듣지 말라'는 3계명은 고 박사가 정한 가훈이었다. 고 전총리는 술자리에서 "첫째와 두번째 원칙은 지켰는데 세번째는 지키지 못한것 같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고인은 아들이 지난 75년 당시로는 `뇌물유혹'이 많은 전남지사에 임명되자 친척들로부터 일정액을 갹출, 매달 이 돈을 인편으로 아들에게 보내면서 "판공비가 부족하면 공금에 손대지 말고 이 돈을 써라"고 했다는 일화도 남기고 있다. 고 전총리는 역대 정부에서 빠짐없이 요직에 기용돼 `관운'이 좋다는 평이 따라 다녔으나, 한때 아버지 때문에 진로가 풀리지 않은 시기도 있었다. 고 전총리가 박정희(朴正熙) 정부 시절 `수습' 딱지를 떼고 내무부 행정사무관이 되고도 보직을 받지 못한 채 3년반 동안이나 무보직 상태로 있었던 것은 당시 아버지가 야당인 민정당 사무총장으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 전총리는 "사표를 써서 안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시기였다"고 회고한다. 고인은 자녀들에게 항상 `든든한 언덕'이었다. 연희전문학교 교수 재직시에는 박봉으로 2남2녀를 충분히 뒷바라지 할 수 없자 `가계'를 위해 집에서 양계를 했는데, 소년시절 고 전총리는 닭똥을 치우는 당번을 하면서 그 냄새에 질려 한동안 계란을 먹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 전총리는 성장해 공무원이 된 후에도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항상 부친과 상의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영삼(金泳三) 정부에서 총리직을 제의받았을 때, 국민회의 후보로 민선 서울시장 선거에 나갈 때 부친의 의견을 듣고 결정했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그러나 고 전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을 때는 이를 따로 부친에게 말하지 않았다. 청력이 약해져 필담을 나눠야할 만큼 기력이 쇠약해졌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고 전총리는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미 하버드 대학으로 유학을 검토했으나 부친의 건강악화를 이유로 이같은 생각을 접었다. 그는 총리직에 있으면서도 매주 한번씩 서울 근교에 살고 있는 부친을 찾아가 문안인사를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화영기자 quinte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