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은 이라크 추가파병을 앞두고 지극 정성으로 공들여온 친한화 노력이 김선일(33)씨 살해사건으로 수포로 돌아가자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일본이 이라크 주민들의 동의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위대를 파병했으나 자국민 인질사건을 '해피엔딩'으로 끝낸 데 반해 한국은 아르빌 자치정부의 파병환영서한까지 받아놓고도 김씨 구출에 무기력함을 노출했다는 비난여론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피랍사건이 테러리스트의 경고대로 참혹한 결말로 끝남에 따라 정부가 그 동안 내세운 파병 목적과 명분이 이라크에서 한국인들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다음달 중순부터 순차적으로 파병되는 자이툰부대의 평화재건지원 임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정부의 공식입장에도 테러 위협이 당초 우려했던 수위를 훨씬 넘은 만큼 자체 경비능력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군 내부에서 점차 힘을 얻고 있다. 군과 정부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라크 저항세력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을 결여한 채 추진해온 친한화작업도 이번 기회에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범정부 차원의 파병준비 노력은 이라크 추가파병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인 2월 말부터 본격 가시화됐다. 조영길 국방부장관이 우호적 파병여건 조성을 위해 2월 27일부터 3월4일까지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쿠웨이트, 오만을 방문하고 외교통상부장관, 건설교통부장관, 정보통신부장관이 다른 중동 국가들을 순방했던 것이다. 일부 자이툰부대원들은 이슬람교도가 대부분인 아르빌 주민과 친근감을 형성한다는 목적으로 3월부터 콧수염을 기르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특전사 11여단 손현주 중위를 비롯한 자이툰부대원 37명은 `금요 합동예배일'에서울 한남동 이슬람사원을 찾아 신앙고백 절차를 밟아 아예 이슬람교에 입교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슬람권에서는 종교가 같으면 외국인일지라도 자국민처럼 대해주고 여성 무슬림은 전쟁에서도 공격하지 않는 등 종교적 동질성을 매우 중시한다는 사실에 감동해 이슬람에 입교했다는 게 당시 부대측의 설명이었다. 서울 상암월드컵 축구경기장에서는 4월 초 군복 차림의 자이툰부대원 3천여명과 가족 2천명이 한국과 친선경기를 치른 이라크 대표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모습이 이라크로 위성중계되기도 했다. 경기에 앞서 원로 태극전사들의 뜻을 모은 `평화의 볼' 전달과 한.이라크 유소년축구 자매결연 행사도 펼쳐졌다. 이라크 TV방송이 생중계하는 축구경기에 자이툰부대가 가족까지 동원해 응원한 것은 파병 목적이 평화재건지원임을 모든 이라크 국민에게 솔직하게 보여주기 위한 의도였다. 이라크전쟁 종료 후 갈수록 악화하는 치안불안과 빈곤 등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거나 고통받고 있는 이라크 국민을 돕기 위해 군대를 보낸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 하기 위해 파병 장병들이 사랑하는 가족과 한 목소리로 이라크를 응원했던 것. 지난해 4월부터 남부 나시리야에 주둔해온 서희.제마부대 장병들은 낮기온이 섭씨 50도를 오르내리는 악조건 속에서도 병마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치료하고 부서진학교를 고쳐주는 등 헌신적인 지원활동을 벌였다. 이라크전 이후 주민들의 약탈로 의자와 책상, 출입문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기능이 완전히 마비된 학교와 병원을 복원하고 위생불량으로 피부병을 앓거나 포탄파편이 온 몸에 박힌 주민들에게 웃음을 되찾아 준 것이다. 군 내부에서는 이러한 친한화 노력이 더 이상 장병안전 보장에 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 것과 관련해 4월11일 이후 비중을 낮췄던 자이툰부대의 경계 및 방호훈련을 다시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들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어 향후 파병부대의 임무전환 여부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had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