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우스 다코다주(州) 러슈모어산에는 4명의 전직 대통령 흉상이 조각돼 있다. 1천4백피트 높이의 돌산에 새겨져 있는 이들은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워싱턴,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남북전쟁으로 연방정부를 구한 에이브러햄 링컨,미국의 위상을 세계무대에 올린 시어도어 루스벨트다. 이들 대통령은 지금도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쉬며 위대한 '아메리카의 정신과 긍지'를 심어주고 있다. 러슈모어가 더 할 나위 없이 훌륭한 교육의 현장으로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토록 의미 있는 장소에 몇 명의 지도자를 추가해 사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이 영광스런 반열에 거론되는 인물은 다름아닌 존 F 케네디와 어제 유명을 달리한 로널드 레이건이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역대 여느 대통령과는 달리 생전에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칭송을 받은 지도자였다. 은퇴 후에는 더욱 인기가 높아져 비판을 일삼는 언론들도 그를 '우상'으로까지 표현할 정도였다. 재임시의 뚝심 있는 정책과 일상의 여유로운 인간성에 매료된 때문이 아닌가 싶다. 미국 역사상 가장 고령의 나이(69세)에 당선된 그는 당시 소련과의 군비경쟁에서 승리하면서 냉전시대를 종식시키는 전기를 마련했고,공급을 중시하는 '레이거노믹스'로 경제회생의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레이건의 진가는 정치인의 능력보다는 삶의 궤적에서 더욱 돋보인다. 넉넉치 못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리노이주의 한 시골대학을 졸업한 뒤 밑바닥 무명배우시절을 거쳐 주지사,대통령을 지내면서 어느 한 순간 유머를 잃지 않았고 인생에 대한 진지함을 토론하곤 했다. 레이건은 이란 콘트라스캔들로 한 동안 곤란을 겪기도 했지만 그의 큰 업적에 가려질 뿐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나도 레이건을 닮고 싶다"고 언급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그릇을 짐작할 만하다. 10년 전 레이건은 알츠하이머병에 걸렸음을 공개하며 "내 생애의 황혼으로 이끌어갈 여행을 시작한다"고 말했는데 그는 이제 고국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안고 영원히 미국민들의 곁을 떠났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