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완투수가 마운드에 오르면 킬러 본능이 꿈틀거린다.' 프로야구 현대에서 좌타자 및 2루수 백업요원으로 조연인생을 살아왔던 7년차 김일경(26)에 대해 팀 팬북에 설명된 내용이다. 지난 97년 경동고 졸업 후 고졸신인으로 현대에 2차 지명(당시 계약금 2억1천만원)됐던 김일경은 20일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그동안 땜질 인생의 어두운 그림자를 한꺼번에 걷어냈다. 지난 97년과 98년은 아예 2군에서 살았고 지난해까지 고작 통산 179경기에 출장, 5홈런 등 타율 0.237(215타수 51안타) 14타점에 그쳤던 김일경이 결정적 순간에 쐐기를 박는 영양가 만점의 안타를 때리고 수비에서도 그림같은 점프에 이은 송구로주자를 잡아내는 호수비를 펼친 것. 김일경이 타석에 나선 건 상대 선발투수 케빈 호지스가 마운드를 내려온 뒤 왼손투수 오상민이 투입된 6회 2사 만루상황. 지난 시즌 타율이 0.219에 그쳤음에도 좌완 투수에는 타율 0.308을 기록할 정도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였던 김일경은 전준호를 대신해 대타로 타석에 섰다. 팀이 5-4로 쫓기는 상황이었으나 김일경은 풀카운트에서 방망이를 힘껏 휘둘렀고 타구는 전진수비하던 박한이를 키를 넘기는 2루타가 됐다. 누상에 있던 주자를 모두 불러들이며 3타점을 올려 8-5 승리에 쐐기를 박는 결정타였다. 김일경은 빠른 발을 이용해 3루를 훔쳤으나 후속타 불발로 득점하진 못했다. 또 2루수 대수비로 나선 7회에도 빛났다. 삼성 공격으로 타자는 2사 1루에서 37경기 연속 안타 신기록행진을 이어가던 옛동료 박종호. 박종호는 지난해까지 현대에서 주전 2루수로 활약하다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로 풀려 삼성으로 옮긴 뒤 지난 15일 LG전에서 34경기째 안타를 때려 일본프로야구의 다카하시 요시히코(히로시마.79년)을 제치고 아시아신기록 행진중이었다. 김일경은 박종호의 안타성 타구를 껑충 뛰어올라 잡아낸 뒤 2루로 송구, 반격을 노리던 삼성의 추격 의지에 찬물을 끼얹었다. 결국 현대는 김일경의 공.수에 걸친 맹활약 덕에 라이벌 삼성의 추격을 뿌리치고 3점차 승리를 거둘 수 있었고 김일경 자신도 김재박 감독에게 강한 신뢰감을 심어줘 더 많은 출장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커졌다. 왼손 대타요원으로 김민우, 채종국과 2루 경쟁중인 김일경은 "2루 만루상황에서 방망이를 갖다댔는데 운 좋게도 타구가 길게 뻗어나갔다.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자신감을 갖고 타격할 생각이다. 수비에서도 2루 주전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매 경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수원=연합뉴스) 이동칠기자 chil881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