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자치지역으로 한국군을 파병해달라는 미국측 제의를 수용키로 결정함으로써 자이툰부대원의 대폭적인 감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이툰부대의 인원과 장비는 저항세력들의 최근 집결지인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의 치안상황을 감안해 편성된 반면에 쿠르드족 자치지역은 대규모 한국군 부대가 투입될 만큼 치안이 불안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당초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라크의 평화재건활동 지원을 목표로 직할대와 서희(공병).제마(의무)부대, 2개 민사여단으로 구성된 3천600여명 규모의 자이툰부대를 창설했다. 1965년 베트남전 이후 최대 파병규모로 기록된 자이툰부대에는 2개 민사담당 대대(특전사)와 1개 경비대대(특공부대), 장갑차중대, 1개 해병대 중대가 포함됐다. 군 당국은 저항세력들의 공격이 늘고 있는 키르쿠크 치안상황을 감안, 평화재건부대원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들 부대의 파병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전투병 파병을 반대하는 여론을 무마시켰다. 현지 사정이 불안정하고 교전을 비롯한 돌발상황이 언제든지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특전사 비중을 높였다는 것이다. 군은 이런 논리를 근거로 민사여단 예하의 특전부대 1천여명과 서희.제마부대 600명 등 1천600명을 재건지원에, 특공부대 500명, 장갑중대 200명, 해병대 100명 등총 800명을 경계근무에, 1천200여명은 사단사령부와 직할대에 각각 편성해 훈련을실시했다. 그러나 군이 이라크전 이후 피해를 입은 곳에 군대를 보내 평화재건을 돕는다는 당초 약속을 어기고 파병 취지와 직접적 관계가 없는 쿠르드족 자치지역을 새로운파병지로 돌연 결정, 병력 규모 및 임무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르빌과 술라이마니야 등은 1991년 걸프전 이후 미.영 연합군의 비행금지구역(No-fly Zone) 설정에 힘입어 이라크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은 채 독립국가에 버금가는 자치를 누려 왔고, 전쟁피해도 겪지 않았다. 이 덕분에 쿠르드족 자치지역은 10년 넘게 유엔 금수조치에 시달렸던 다른 지역에 비해 사회기간 시설 등이 훨씬 양호하고 주민들의 생활수준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미군 주둔지에 대한 박격포 등의 공격이 단 하루도 멈추지 않고 있는 키르쿠크를 염두에 두고 편성한 전투병 중심의 3천600여명을 아르빌이나 술라이마니야에 그대로 보낼 명분이 사라진 셈이다. 더욱이 미군도 쿠르드족 자치지역의 양호한 치안상황을 감안해 최근 그 곳에 파병됐던 1∼2개 전투병 중대를 빼고 민사중대와 본부대대로 교체, 2곳 모두 합쳐 300명 미만의 병력을 형식적으로 주둔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방부는 기존에 편성된 자이툰부대의 파병 규모나 장비를 줄일 계획이 현재로선 전혀 없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군은 또 조만간 실무조사단을 현지로 보내 지형과 기후, 임무수행 용의성 등을종합적으로 고려해 아르빌이나 술라이마니야 중 한곳을 최종 선정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이에 대해 군에서는 막대한 규모의 국민혈세가 소요되는 데다 쿠르드족들이 분리독립운동을 추진할 경우 아랍권 전역에서 반한감정을 촉발할 수도 있는 점을 감안해 이라크 파병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국회에 파병동의안을 제출할 당시 자이툰부대의 1년간 예산으로 2천296억원을 상정했다가 지난달 2천918억원으로 올려줄 것을 기획예산처에 요청했다. 한편 자이툰부대가 아랍권과 적대적 관계에 놓여있는 쿠르드족 자치지역에 파병된다면 한국 기업들이 이라크 진출시 기대됐던 경제적 이익들도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산업연구원 주동주 부연구위원은 최근 이라크 민간정부가 2년 내에 출범할 경우우리 기업들은 건설분야 등에 진출해 이라크로부터 연간 4억-8억달러의 외화획득이기대된다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had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