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국정과제의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 작년에 일자리 수가 3만개 줄어든 형편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노동부의 금년도 업무보고에 따르면 이른바 '비정규직'을 보호하고 남용을 규제하기 위한 법제를 만들겠다고 한다. 또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적극 권장하겠다고 한다. 우리나라 실업문제의 본질을 생각할 때 이 같은 정부의 노동정책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없앨 것 같아 답답하다. 무릇 모든 병에는 증상이 있으며 그 증상의 원인을 밝히는 데서 치료가 시작돼야 한다. 우리 노동시장의 병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년실업이다. 작년에 전체 일자리 수가 줄어들었다고 요즘 난리지만 통계를 보면 청년 일자리는 이미 2000년 말부터 절대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청년 일자리 감소가 전체 일자리 감소를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 일자리는 어디에서 줄어들고 있는가. 다시 통계를 보자.우리나라 3백인 이상 대기업들은 97년부터 외환위기 이후 4년 동안 전체 일자리 수를 약 14만개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들 기업의 20대 청년 일자리 수는 같은 기간 20만개나 줄어들었다. 즉 대기업의 청년 일자리 수 감소가 전체 일자리 수 감소를 압도하고 있다. 한 마디로 기업들이 이제 과거처럼 젊은이들을 뽑지 않는 것이다. 그야말로 이태백이 문제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대기업들은 왜 젊은이를 뽑지 않으며 반면에 젊은이들은 왜 대기업으로만 몰리는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대기업 정규직과 여타 부문 일자리의 현격한 임금격차이다. 문제는 대기업 정규직의 높은 임금이 다른 근로자들 임금의 희생 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강력한 독점 노조로 인해 인원 조정도 마음대로 못하고 임금을 높이 인상할 수밖에 없는 대기업들은 그 부담을 한편으로는 신규 인력을 뽑지 않음으로써 분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청 협력업체의 단가를 인하함으로써 전가해왔다. 그리고 하청단가 인하는 그 업체 근로자의 임금 동결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 일자리 감소와 날로 벌어지는 임금격차는 이렇듯 대기업 노조의 폐해가 중요 원인이 되고 있다. 상황이 이럼에도 최근 노동계가 이른바 비정규직 억제를 주장하고 임금을 정규직 수준에 가깝게 올릴 것을 요구하자 정부가 이를 수용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완전히 방향을 거꾸로 잡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더욱 키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계약직이나 파견을 규제한다면 그 자리가 정규직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 자체가 없어질 것이다. 임금격차를 해소한다고 정규직 임금 억제 대신 비정규직 임금을 올리려 한다면 기업들은 이 땅을 떠나 기업하기 좋은 환경으로 옮겨갈 것이고 남는 것은 실업뿐일 것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청년실업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노동시장을 숨막히게 조이고 있는 칡넝쿨들을 풀어주는 것이 우선이다. 전투적 노사관계와 반시장적 규제를 청산해 시장이 자생적으로 고용창출 능력을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정부는 노조의 일방적이고 편향된 주장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한국의 노조는 이제 탄압 속에서 기본권을 호소하는 약자가 아니라 정부를 위협하는 막강한 권력집단으로 바뀌고 있다. 비정규직 규제나 산별노조 체제 등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시장기능을 무력화하려 할 때 이를 막아야 함은 정부의 책임이다. 뿐만 아니라 임금이 소비자 물가와 국민경제 생산성 사이에서 결정되도록 노조를 설득해야 한다. 이 원칙만 세워져도 일자리 창출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를 풀어 고용 기회가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 특히 파견법은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업종 제한은 당연히 철폐돼야 하고 기간제한도 완화돼야 할 것이다. 일자리 창출은 무언가를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낡은 것을 떼어내는 데서 이루어진다. sina@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