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쟁시대에서 믿을 건 기술력 뿐이다' 건설산업이 과거 노동집약적 전통산업의 이미지를 벗어나 첨단 기간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선 핵심기술 축적이 최우선 과제로 꼽히고 있다. 무한경쟁체제의 해외건설시장에서 건설기술력과 자본력은 곧 생존을 위한 최후의 무기다. 하지만 국내 건설기술 개발여건은 매우 열악하다.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중 건설교통 분야는 1%에 그치고 있다. 건설업계도 매출신장 등 양적성장에만 매달려 기술개발은 등한시하는 경향이 짙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부족한 건설기술개발 투자액 지난해 건설교통부의 연구개발 예산은 건교부 전체 예산 16조7백76억원의 0.45%인 7백22억원에 불과했다. 이는 다른 주요 부처의 평균치 4.6%와 국가 전체예산에서 차지하는 연구개발 투자비율 4.8%보다도 크게 낮은 수준이다. 특히 올해 국가전체 연구개발예산은 6조6백억원으로 작년보다 8%나 늘었지만 건교부의 연구개발예산은 오히려 작년보다 0.2%가 줄었다. 건설분야 연구개발비의 절대 규모에서도 미국은 한국의 25.8배,일본은 7.3배 수준이다. 건설업체들의 기술개발 투자도 부족하다. 지난 2001년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투자비율은 1.12%로 제조업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더욱이 건설교통부가 지정하는 건설신기술 개발에도 대형건설업체보다는 중소건설업체들이 더 적극적이다. 90년 이후 작년까지 모두 4백4건의 신기술이 나왔다. 이 가운데 대기업의 신기술은 20%인 81건에 그쳤다. ◆갈수록 저하되는 기술경쟁력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한국건설의 종합적 기술수준은 선진국의 67% 수준이다. 도로 하천시설 교량 터널 빌딩 등의 시공기술은 선진국의 80% 수준으로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러나 건축분야 기획 설계 감리와 토목설계분야인 엔지니어링 등 부가가치가 높은 용역분야는 경쟁력이 취약하기 이를 데 없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이유섭 수석연구위원은 "일본의 건설기술 수준에도 10년 이상 뒤처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낮은 기술력 때문에 건설생산물의 단가와 공사기간에 대한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다. 지하철 1㎞를 건설하는데 한국은 5백70억원,싱가포르는 4백70억원의 비용이 든다. 40층짜리 초고층 건물을 짓는데도 미국은 18개월,한국은 33개월의 공사기간이 소요된다. 또 최근에 완공된 인천국제공항 경부고속철도 서해대교 광안대교 등 초대형 사회간접자본(SOC)시설물과 초고층 건물 등의 기획·설계 용역은 예외없이 핵심기술력을 갖춘 선진국 용역업체에 맡겨야 했다. ◆기술개발 왜 안되나 정부의 관심과 지원부족으로 인한 부진한 연구개발 투자가 가장 큰 문제다. 민간업체의 기술개발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가 미흡한 것도 원인이다. 건설기술은 검증·적용 주기가 길고 많은 개발비가 소요되는 데도 정부의 인센티브 제공,신기술 독점사용권 보장 등의 육성제도가 취약해 기업들의 참여도가 낮은 실정이다. 또 지금까지 단순시공 위주의 외형적 성장에 주력한 결과,기술수준이 일부 시공분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선진국과 큰 차이를 보인다. 여기에 외환위기까지 겹치면서 건설업체의 기술개발 여력이 상실된 것도 원인이다. 국내 건설업체의 기술개발투자비는 매출액 대비 0.8%에 그치고 있다. 전체 산업평균 2.17%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입찰과정에서 신기술 적용을 적극 독려해야 하는 공공공사 발주기관도 특혜시비를 우려,이를 회피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업체들은 기술개발보다는 로비나 담합,저가덤핑 등을 통한 후진적 공사수주 전략에 매달리고 있다. ◆기술개발 유도할 여건 마련해야 단기적으로는 공공공사 입찰제도 등을 기술경쟁방식으로 전환해야한다. 장기적으로는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계획 수립 및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예컨대 정부의 건설분양 R&D 투자가 최소한 다른 산업분야와 동등한 수준이 돼야 한다는 주문이다. 건설업계가 자발적으로 기술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이복남 선임연구원은 "지금처럼 '개발하면 인센티브를 준다'식의 피동적인 지원책이 아닌,건설업계가 기술개발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적극적 유인체계 구축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영신 기자 ys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