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와 경영계, 정부가 8일 전격 합의한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은 한 마디로 고용창출을 위한 '노동계의 임금안정 협력과 경영계의 고용조정 최소화'로 요약된다. 근래들어 일자리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내수침체와 기업의 투자부진 등으로 고용창출 능력이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노동계는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는 대신 경영계는 인위적인 고용조정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고통을 분담하는데 노사 양측이 접점을 찾은 것으로 풀이된다. ▲핵심 내용 협약은 전문과 7장,23절의 모두 55개 항목에 이를 정도로 폭넓은 내용을 담고있다. 우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기업은 투자확대를 통해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인위적인 고용조정을 최대한 자제하고, 투명경영을 실천함으로써 고용안정 노력과 함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했다. 노조는 일자리 만들기의 핵심은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있음을 인식해 생산성 향상에 적극 협력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임금수준이 높은 부문에 대해서는 향후 2년간임금안정에 협력하고,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을 배려하는 노동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정부는 일자리 만들기를 정부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 기업의 투자확대에장애가 되는 모든 경제규제를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해 정비해 나가기로 했다. 일자리 창출에 못지않게 기존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기업은 인위적인 고용조정을 최대한 자제하고 감원이 불가피한 경우 노조와 성실한 협의를 통해 그 인원을최소화하며, 추후 인력 채용때 퇴직자를 우선 재고용토록 노력하기로 했다. 노조도 감원의 최소화를 위해 임금,근로시간의 조정, 배치전환의 원활화 등 기업 내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나가는데 협력하고, 정부는 고용보험에서 이를 지원키로 했다.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근로자 등 근로계층간 근로조건 격차를 줄이기 위해 기업은 정규직 채용기회가 있을 경우 비정규직을 우선 채용토록 노력하고 대기업은 하도급업체의 경영안정을 지원함으로써 하도급업체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에도움을 주도록 했다. 노조는 취약계층 등을 함께 배려하는 노동운동을 전개하고,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에 대한 유형별 개선방안을마련키로 했다. 특히 노사관계 발전이 고용안정 및 경제성장의 밑바탕이라는 인식아래 경영계는투명경영과 근로자 참여를 통한 노사동반자 관계를 정립하고, 정부는 노사분쟁의 사전적, 효율적 조정을 위해 인프라를 확충해 나가기로 했다. 노조는 생산시설 점거나 조업방해, 경영자는 부당해고나 부당노동행위 등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산업현장의 임단협 과정에서 '고용안정-임금안정-노사화합'의 정신이 구현되도록 공동 노력키로 했다. ▲협약 마련 의미 이번 사회협약은 노사정이 큰 밑그림이기는 하지만 고용불안과 우리경제의 미래에 대해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사회적 대화를 통해 상호신뢰에 기반한 공동의 해결방안에 합의했다는 데 상당한 의미가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98년 2월 노사정위원회가 정리해고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체결한 이래 고용조정,임금안정 등에 대해 광범위한 내용의 사회협약을 체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협약 마련 과정에서 보여준 대타협 정신이 노사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우리나라와 같이 대외의존도가 높은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 선진국에서는저성장, 고실업시대에 돌입한 1980년대부터 일자리 만들기를 중심으로 사회적 연대를 구축함으로써 고성장, 저실업이라는 노사 동반성장의 길을 걸어왔다. 노사정위는 지난달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 기초위원회'를 구성, 8차례의 공식회의와 실무협의, 비공식회의를 통해 "고용안정-임금안정-노사화합"을 이뤄내기 위해 이번 사회협약을 도출해냈다. 따라서 이번 협약체결을 계기로 노사 당사 당사자들간 대화와 타협을 통해 노사공동의 이익을 창출해 나가는 노사관계 관행이 산업현장 전반으로 확산될 경우 과거대결 일변도의 노사관계에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의 한 인사는 "이번 협약은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상황에서 노동계와 경영계가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일선 사업장에까지 이러한 분위기가 확산될 경우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사회적 협의기능을 한 단계 높이는 전환점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향후 일정과 전망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은 10일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노사정위 본위원회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그전에 노사 양측은 내부 조직의 추인 절차를 밟게 되는데 한국노총은 9일 산별대표자회의에서 협약 내용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며, 경영계도 내부 조직의 의견수렴절차를 거치게 된다. 사회협약이 최종 확정되면 정부는 이달중에 사회협약에 기초한 범정부적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노사정 대표가 참여하는 '일자리 만들기 민관합동위원회'를 구성해사회협약을 지속적으로 보완,발전시켜 나가게 된다. 그러나 이번 사회협약의 성공여부는 무엇보다 노사정 대표의 합의사항이 과연일선 산업현장에까지 파급될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 이번 합의에 노사정위에 불참중인 노동계의 한 축인 민주노총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그나마 최근 이수호 위원장 체제를 출범시키면서 '대화'를 강조하는방향으로 일부 노선 변화 가능성을 예고하고는 있지만 노사정위가 민주노총을 끌어안지 못할 경우 이번 사회협약의 효과는 반감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정부가 이달중에 마련키로 한 범정부적 종합대책에 어느 정도의 실현 가능한 방안이 포함되느냐도 이번 사회협약의 성패를 가늠할 변수로 꼽히고 있다. 노사정이 어렵게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이라는 큰 밑그림을 그려냈지만 세부실천방안이 담보되지 못할 경우 일부의 지적처럼 '총선용'라는 지적이 고개를 들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이성한기자 ofcours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