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9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통과를 시도한다. 불과 3개월 사이에 세 번째 시도다. 지난해 말과 올 1월에는 의원들의 단상 점거로 논의조차 하지 못하는 파행을 경험했다. 소속당을 가리지 않고 농촌 지역구 출신 의원들이 삼삼오오 단상을 점거하는 사이에 차가운 겨울 거리는 비준 결사반대의 붉은 띠를 두른 시위대가 점거했다. 난장판,아우성,혼란 속에 국회가 두 번째 시도에도 비준안을 통과시키지 못하자 외신은 한국이 스스로 제 무덤을 파고 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라앉은 경기,깊게 드리운 청년실업의 짙은 그림자 속에 한국경제가 그나마 무역으로 어려운 고비를 힘겹게 버티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아는데,국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국회가 왜 그러고 있는지 그들에게는 의아하게 비추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라느니,세계 모든 나라가 FTA 체결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 우리만 외톨이라느니,우리가 비준을 미루면 국제사회에서 신인도가 떨어진다느니 등등… 국회의원들도 이미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농민 피해대책이 부족하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한다. 그들에게 묻는다. 비준동의안과 패키지로 상정된 피해 보완대책 법안들과 농어업·농어촌 지원대책들을 제대로 살펴보기나 하였는지? 일각에서는 피해보상액의 규모가 너무 커서 FTA 협정의 혜택을 초월한다고 할 정도라고 지적한다. 한·칠레 FTA가 발효되면 한국의 농업 기반이 붕괴된다는 주장은 허구에 가깝다. 관세가 없어지면 농업 기반이 붕괴된다고 주장하는 사과 배는 협정에서 아예 제외되었고,포도도 성수기 수입물량은 제외하고 비수기 물량에 대해서만 10년 동안 관세를 철폐하는 계절관세 제도를 도입한 것이 타결된 FTA의 내용이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비준 반대측이 제시하는 피해추정액은 협정 타결 전에 나온 것으로 이러한 실제 협상 결과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다. 이러고도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책이 미흡하다고 목소리를 높일 것인가? 우리 농민들은 외국의 시장 개방 요구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주겠다는 정부의 허튼 공약도 더 이상 믿지 않지만,표몰이에만 혈안이 되어 비현실적이고 무책임한 발언만 일삼는 정치인쯤은 얼마든지 가려낼 수 있을 만큼 성숙된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다. 무역이란 주고 받는 것인데,우리 수출만 증대시키고 상대국으로부터의 수입을 저지하겠다는 것은 애당초 기만적인 발상이다. 관세가 없어지고 각종 무역장벽이 제거되기 시작하면 당연히 자국이 경쟁력을 가진 품목의 수출이 늘어나는 한편,그 쪽으로 자원이 몰리게 되고 동시에 경쟁력이 없는 분야에 고용된 자원이 빠져나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러한 '창조적 파괴'가 경제 전반의 효율성을 높이는 비결이다. 수출은 좋고 수입은 나쁜 것이라는 사고가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한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앞당기기 위한 이른바 통상 인프라로서의 FTA 추진은 좌초할 수밖에 없다. 열린 개방경제체제의 최대 수혜자였던 한국의 미래는 여전히 열린 개방체제에서 찾아야 한다. 다른 대안이 없다. 이 과정에서 농업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난제이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과제는 아니다. 문제를 회피할수록,지연시킬수록,결국 더 큰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다. 나는 소망한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가 이번에는 제대로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기를.몸으로 단상을 점거하고 욕설을 하는 대신,모든 할 말 있는 의원은 정정하고 당당하게 발언으로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토론을 통해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이번에는 볼 수 있기를.나는 또 소망한다. 격론 끝에 당당하고 공개적인 표대결을 통해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이 존중되는 모습을.나는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 사회가 무지와 두려움에서 이성과 논리의 광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사무총장 byc@ew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