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라면 명색이 그라운드에 나가야 선수인데 이렇게 무릎에 물이 차올라 벤치에 앉아 있다니..."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첫 골의 히어로 이호진(20.성균관대)이 8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 알-자에드 스포츠시티 훈련장에서 얄궂게도 골과 함께 따라붙은 부상으로 동료들의 플레이를 애타게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된 답답함을 시원하게 털어놨다. "독일전에서 첫 골을 넣고 너무 기뻐 아픈 줄도 모르고 벤치까지 막 달려가는데 점점 통증이 오더니 동료들에게 잡혀 넘어졌어요." 한국청소년축구대표팀의 왼쪽 날개 이호진은 독일전에서 골을 넣고 골키퍼와 부딪힌 뒤 무릎 인대가 파열돼 조별리그 남은 2경기를 모두 결장했고 앞으로도 출전이 어려운 상태. `박성화호 반항아'로 불리는 그는 누구보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과 지나친 승부욕 때문에 때로는 팀 플레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자주 듣는다. 박성화 감독은 이호진에게 팀 플레이를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줄곧 말해왔다. 조직력을 무기로 내세우는 팀일수록 한명 쯤은 야생마처럼 상대 진영에서 마구 휘젓고 다니는 반항아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상대에게 약해 보이면 안되잖아요. 밖에서는 양처럼 보이다가도 그라운드에 나서면 사자로 돌변해야만 해요. 제가 (이)천수형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거침없는 플레이와 반항아적인 면모 때문입니다." 부스스한 인상 때문에 `왕초'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이호진은 알고 보면 박성화호의 타고난 분위기 메이커다. "동료들이 힘이 빠져 있을 때면 제가 나서죠. 막내 (박)주영이를 비롯해 동료들 성대모사하는 게 제 유일한 개인기입니다. 배꼽잡고 넘어질 때도 있어요." 이호진은 미국전 후반 볼을 돌리는 지루한 경기로 실망을 안겨준데 대해서도 우리 목표는 4강이고 목표를 향해 가다보면 돌아갈때도, 때로는 장애물을 넘어갈 때도 있는 것 아니냐고 당차게 반문했다. "골을 넣고 나서 실려간 병원에서 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달라고 하대요. 국제대회에서 득점하고 나니까 이렇게 하루 아침에 유명세를 타는구나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 꿈은 이제 시작입니다." 중원사령관 권집(수원)과 동창으로 중화초등학교에서 센터백으로 축구를 시작한 그는 한양중-강릉농공고-성균관대를 거치며 골키퍼를 빼고는 안해본 포지션이 없는 멀티플레이어. "향후 진로라면 당연히 논스톱 유럽행이죠"라고 잘라 말하는 이호진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왼쪽 공격수 라이언 긱스를 가장 닮고 싶다고 했다. "왼쪽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인데 저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잖습니까"라며 주먹을 불끈 쥔 이호진은 이미 유럽 프로리그의 매운 맛을 약간은 본상태. 최근 설기현이 뛰는 벨기에 안더레흐트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은 이호진은 진로는 에이전트에게 모두 맡겨뒀다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자주 부상이 따라붙었지만 세밀한 플레이를 하려다 과감성을 잃고 싶지는 않다는 강단이 돋보이는 선수다. 부상한 뒤 골키퍼 성경일(건국대)이 일일이 도와줘 너무 고맙다는 이호진의 모습은 이미 이번 대회를 뛰어넘어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세계적인 왼쪽 날개로 활약할 그날을 꿈꾸고 있었다. (아부다비=연합뉴스) 옥철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