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 각국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의 우산 아래 비인도적 인종학살 종식을 명분으로 실시한 코소보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문제가 전쟁 종료 4년 만에 사법 심판대에 올랐다. 독일 본 지방법원은 15일, 나토군의 유고 코소보 공습 당시 사망한 민간인의 유족 35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심리를 시작했다. 이는 향후 나토군의 유고공습과 관련해 잇따를 소송의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999년 5월 30일 나토군 전투기들은 세르비아의 바르바린 마을의 다리에 2천t의폭탄을 퍼부어 이를 파괴했으며, 이 때문에 15세 소녀를 포함한 민간인 10명이 죽고17명이 중상을 입어 불구가 됐다. 유족측 변호사는 당시 나토군이 다리를 폭격하면서 민간인 사상을 피하기 위한모든 노력을 다하지 않았으며 이는 제네바협약 등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당시 폭격은 독일군이 맡지는 않았으나 나토의 회원국으로서 전쟁에 참가한독일 정부도 이에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배상금을 요구했다. 유족 측은 당초 배상금으로 350만유로를 요구했다가 100만유로로 낮췄다. 이에 대해 정부측 변호인은 유고에 대한 78일 간의 공습은 세르비아계의 알바니아계 학살이라는 비인도적 재앙을 종식시키기 위한 조치이며, 다리가 세르비아계의군사시설이었기 때문에 폭격이 불가피한 합법적인 목표물이었다 주장했다. 1977년 독일 등이 서명한 제네바협약 추가 조항에 따르면 전쟁 중 군은 민간인과 군인을 구분하고 군사적 목표물에만 직접적인 공격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독립적인 민간조사단의 보고서는, 이 다리가 최대 12t의 무게만 감당할 수 있으며,군사장비를 수송하기에는 너무 작다고 지적했다. 또 유고 수도나 코소보 전투지역에서 근 200km 떨어진 농촌인 이 마을 주변엔 군시설이 없다고 밝혔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독일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 기자는, 폭격 당시 시장과 교회에 가까이 있던 이 다리 주변에는 일요일 오후 미사를 마친 사람들이 많았으며, 날씨가 화창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공습은 범죄행위였다고 증언했다. 이날 법원 밖에서는 1백여명의 평화주의자들이 전쟁 희생자들의 사진을 전시하며 독일 정부에 보상을 촉구했다. 반면 독일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폭격 가담 조종사나 전투기가 독일군 소속이아니므로 독일 정부가 배상할 수 없으며, 제네바협약 상 민간인은 전쟁 중의 피해와관련해 개인적 보상을 전쟁 참여 정부들에 요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석과 판결은 법원의 몫으로 남아 있다. 오는 12월 10일 판결을 내릴 본 지법 재판부는 이 사건이 결국 독일의 상급법원이나 유럽재판소까지가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당시 사민당과 녹색당 좌파 및 지식인, 반전단체 등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토군 일원으로 코소보 내전에 개입하며,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독일군을 해외로 파병했다. 코소보전쟁은 이라크전과 상황은 다른 점이 있으나 유엔의공식 허가를 받지 않고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다른 나라를 공격했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베를린=연합뉴스) 최병국 특파원 choib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