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중앙인사위원회는 '장관 성과관리제'를 전면 시행키로 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가 '당분간 없었던 일로 해달라'고 취소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성과관리위원회가 장관들로부터 역점과제와 실행계획 등을 담은 이행계획서를 받은 뒤 최종 결과와 비교 평가해 정부 효율성을 높이겠다는게 이 제도의 취지였다. 중앙인사위는 "준비가 부족해서"라고 취소 배경을 설명했지만 총리실 주변에 나도는 얘기는 전혀 달랐다. "일부 장관들이 소신행정 저해 등을 이유로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반대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제도 시행은 연기됐고 장관 평가를 통해 정부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계획도 그만큼 늦춰졌다. 국가 생산성을 높이는데 정부의 생산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본과 노동을 승수적으로 결합해내는 사회적 인프라가 바로 총요소 생산성이며 이는 행정과 법 제도를 운영하는 정부의 생산성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정부 생산성을 높이려면 '공무원=철밥통'이라는 인식을 서둘러 깨야 한다는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철밥통을 방치하면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을 부추기고, '행정규제 양산→정부 비대화→국가 생산성 취약'이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중앙부처 차관을 거쳐 지금은 산하 기관장을 맡고 있는 C씨가 겪은 최근의 사례는 그 단적인 예다. 그는 지난 6월 지방자치단체에 인허가 업무를 신청했다가 쓴 맛을 봤다. "그 정도쯤이야 했는데 도무지 진도가 안나가요. 가타부타 얘기도 없고.여기저기를 통해 압력을 넣었더니 그제서야 움직이더군요. 만약 중국과 한국을 저울질하며 현지 투자를 계획하는 외국 기업이었다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식은 땀이 납니다." 정부 조직의 비효율성도 문제로 지적된다.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처럼 업무가 수평적으로 겹치는 일부 부처의 경우 조직이나 기능에 대한 조정 필요성이 계속 제기됐지만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조직 정비는커녕 이번 정부 들어 장관급 조직은 오히려 늘어났다. 지난 99년 29명이었던 장관급 숫자는 지난해 33명으로 불어났고,이번 정부에서는 35명으로 더 늘었다. 전체 공무원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2000년 54만5천여명이었으나 올들어서는 57만6천여명으로 3만1천명 이상 늘어났다. 정부조직의 감투 확대와 비대화는 필연적으로 공무원 사회의 동맥경화 현상을 낳게 마련이다. 정부 내에 '사공'이 많아졌으니 중요한 국가정책이 오락가락하게 되는 건 필연적 귀결이다. 서울외곽순환선 사패산 터널이나 경부고속철도 등은 '된다 안된다'는 논쟁으로 엄청난 기회비용이 들어간 대표적인 사례다. 한 건설회사 임원은 "국책사업일수록 절대로 참여해서는 안된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돈다"며 "앞으로 SOC(사회간접자본시설) 공사는 대부분 민자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지만 정부가 민원에 휘둘리면서 계획대로 사업이 추진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지방정부의 경쟁의식도 문제다. 지자체들의 '너도나도 병'은 국가재원의 낭비로 이어진다. 지하철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지하철이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등이 너도나도 지하철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수급분석조차 제대로 검토되지 않아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다. 정부 생산성이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은 참여정부 들어 더욱 약화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조사에서 2001,2002년 10위권 초반이던 정부 경쟁력은 올들어 18위로 뚝 떨어졌다. 정부 생산성이나 효율성은 아직도 다른 나라 이야기다. 또 정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직 정리조차 되지 않은 듯한 느낌이다. 중국 정부는 물론 미국이나 영국조차 공무원들이 앞장서서 외자유치에 나서고 있다는 이야기들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외자 유치 등은커녕 지금은 공무원 스스로가 몸집만 비대해져 민간 경제에 오히려 부담이 된다고 할 정도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야말로 국민에 대한 서비스 기관이어야 하며 공무원은 가장 유능한 대국민 서비스맨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그것을 위한 실행계획은 아직 소식조차 없다. 박기호 기자 kh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