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극사실회화의 선두주자인 서양화가 고영훈씨(52)의 작품이 오는 11월 초순 뉴욕에서 열리는 소더비 미술품 메이저경매에 출품된다. 세계 최대 미술품경매회사인 소더비의 가을 메이저경매는 10여개 분야로 나눠 열리며 고씨의 그림은 이 중 가장 비중있는 행사인 '현대미술 섹션(Contemporary Part)'에 나갈 예정이다. 한·중·일 미술품만 거래되는 '극동아시아 섹션'에는 그동안 남관 김창열 등 국내작가의 작품이 출품된 적이 있지만 '현대미술 섹션'에 작품이 나가는 것은 고씨가 처음이다. 고씨는 "소더비측 관계자가 작업실을 방문해 출품을 권유해 와 경매가 이뤄지게 됐다"며 "작품성을 나름대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출품작은 그의 대표작인 50호크기의 '돌작업' 또는 '깃털'시리즈 중에서 선정될 예정이다. 고씨는 "요즘 관심있게 그리고 있는 달항아리작품을 내고 싶었지만 경매에는 작가보호 차원에서 3년이 지난 작품을 출품토록 돼 있어 2000년 이전에 제작된 그림을 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책 꽃 돌을 정밀하게 그리는 고씨는 80년대부터 해외에서 두각을 나타낸 작가다. 1986년 베니스비엔날레에 국내작가론 처음으로 한국대표로 참가했고 1996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미술품 시장인 바젤아트페어에도 국내 최초로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해외에서 팔린 그의 그림은 1백점이 넘는다. 파리의 '블롱델'화랑 전속작가시절인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는 그린 작품의 절반을 해외에서 판매했다고 한다. "전에는 한달에 1백호 그림을 3점 정도 그렸는 데 요즘엔 50호짜리 2∼3점도 제작하기 힘듭니다. 나이 50을 넘으니 점점 욕심이 생겨서 그런가 봅니다." 이젠 작가로서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작품을 그리다보니 작업에 신중을 기하게 됐다는 뜻이다. 고씨는 20년 이상 극사실그림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사실화는 회화가 존재하는 한 영원할 것"이라며 "사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엔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작품성이란 테크닉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작가의 정신을 반영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제주 출생으로 홍익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내년에 5년만에 개인전을 가질 예정이다. "전통이 담겨있는 도자기와 현대를 상징하는 찌그러진 냄비를 함께 보여줄 생각입니다. 달항리와 자기류는 그런대로 괜찮은 데 냄비를 어떻게 표현할 지 고민 중입니다."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