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제작 명필름)은 가족 붕괴의 실상을 독특한 방식으로 연출한 문제작이다. 불륜을 무조건 단죄하지 않고 불륜과 외도가 판치는 현실을 철저히 수긍한다. '바람난 가족'의 구성원들은 '박제가 된 일상'에서 행복과 청량감을 만끽한다. 가족은 이미 해체됐으며 이제는 새 판(제도)을 짜야 할 시점이라고 선언한다. 영화는 세 번의 죽음과 불륜을 병치시키는 구도를 택한다. 불륜은 죽음의 고통을 달래줄 수 있는 방편임을 뜻하는 장치다. 도입부에서 총 맞은 유골 발굴현장은 변호사이자 '바람난 가족'의 가장인 주영작(황정민)에게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다. 그의 아버지(김인문)가 병으로 죽음을 맞는 순간도 끔찍하지만 슬픔은 그리 깊지 않게 묘사된다. 그러나 아들이 숨졌을 때 부부는 각자 통곡하고 서로간의 갈등은 봉합되기 어려운 상태로 치닫는다. 주영작은 세 번의 죽음을 본 뒤 애첩의 몸을 탐닉하고픈 충동을 느낀다. 아들이 숨졌을 때 주영작의 아내 은호정(문소리)의 불륜도 정점에 달한다. 이들에게 불륜은 지루한 일상에서 탈출하는 활력소이며 고통스런 현실을 잊도록 해주는 마약이다. 호정의 시어머니 홍병한(윤여정)이 남편의 죽음과 함께 '로맨스 그레이'가 되는 장면은 이제는 원하는 대로 사는 삶을 택했다는 뜻이다. 호정이 고교생과의 베드신에서 오르가슴을 느끼는 까닭도 솔직한 성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바람난 가족들은 '나름대로' 행복하다. 불륜의 파트너들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위로받는다. 때문에 이 작품은 불륜을 경고하는 영화가 아니라 무너진 가족관계에 진지한 반성을 촉구하는 영화다. 호정이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난 '싱글 맘'의 신분에서 아기를 갖는 것이 그 증거다. 이 영화는 오는 27일부터 9월6일까지 이탈리아에서 열릴 제60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