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가 12년 장기 불황에서 벗어나 '바닥'을 쳤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물론 기업들의 지속적인 구조조정으로 고용상황은 여전히 나쁘고, 소비시장도 침체 상태에 빠져 있다. 그러나 주요 기업들이 2002회계연도(2002년 4월∼2003년 3월 말)를 기점으로 이익이 대폭 증가, 경제회복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 일 중앙은행이 1일 발표한 단기 경기지표인 '단칸(短觀)지수'는 2001년 1분기 이후 가장 좋게 나타났다. 실물경제 지표인 광공업생산을 비롯 경기낙관론을 뒷받침하는 지표들도 잇따르고 있다. 일본 제조업의 기둥인 전기전자 자동차 철강업 관련 일부 업체들은 91년 이후 처음으로 설비 투자를 늘리는 등 투자 마인드도 살아나는 분위기다. 일본 게이오대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교수(전 대장성 차관)는 "일본경제 전체가 회복 국면에 진입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기업 경쟁력이 살아나 경기가 바닥권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 제조업 체감경기 개선조짐 뚜렷 =제조업체의 체감 경기를 나타내는 단칸지수(DI)는 2분기에 마이너스 5를 기록, 전분기(-10) 보다 개선됐다. 아직은 어렵다고 느끼는 업체들이 많지만 기업들의 체감경기가 개선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금주초 발표한 5월중 경기 지수(日經BI, 2000년 100 기준)는 98.1로 한달 전보다 1.3포인트 높아졌다. 광공업 생산 등 실물 경기 지표도 뚜렷히 호전되고 있다. 광공업생산지수는(2000년 100 기준) 지난 5월 94.5로 전달보다 2.5포인트 상승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라크전쟁의 조기 종전과 미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증시가 살아나고, 기업실적도 좋아져 일본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서 탈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실업률이 사상 최고 수준인 5.4%를 맴돌고, 개인 소비가 여전히 부진한 데다 디플레 우려마저 제기돼 본격적인 경기 회복을 기대하기는 성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 기업들 설비투자 나선다 ='V자 회복'을 실현한 대기업들이 실적 개선을 배경으로 본격적인 투자에 나서 경제 회복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 상장기업 매출은 한해 전보다 1.3% 감소했지만, 구조조정에 힘입어 경상 이익이 22.8% 급증했다. 특히 장기불황에도 불구, 상장기업의 16.2%가 창사 이후 사상 최대 이익을 거둬 일본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같은 추세는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03 회계연도에 상장기업 경상이익이 15.7%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매출액은 1% 성장에 그치겠지만 인건비 재료비 등의 삭감으로 수익성이 개선될 것이란 분석이다. 기업들이 투자에 본격 나선 것도 일본 경제에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R&D(연구개발) 투자를 축소해왔던 전기전자 철강 등 전통 제조업체들이 투자를 선도하고 있다. 특히 히타치 도시바 소니 마쓰시타 등 9대 대형 전기전자 업체의 R&D투자는 올해 약 3조엔(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집계됐다. 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