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은행 파업사태가 나흘만에 극적으로 타결된 것은 노ㆍ사ㆍ정 3자간에 파국만은 막아보자는 공감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조흥은행을 인수하는 신한지주는 파업이 계속될 경우 대규모 고객이탈로 껍데기만 가져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고 노조측에선 어차피 매각이 결정된 마당에 최대한 실리를 챙기자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협상이 급진전됐다. 정부도 조흥은행의 전산망이 다운될 경우 금융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협상을 적극 중재했다. 그러나 합의문 10개항 가운데 민감한 부분은 2~3년 후 통합추진위원회가 결정토록 한데다 일부 조항을 놓고 서로 다른 해석을 낳을 소지가 있어 통합 갈등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지적이다. ◆ 3년 독자경영 결론 지난 20일과 21일 두 차례의 공식협상과 여러 차례의 물밑접촉에도 불구하고 평행선을 달리던 노ㆍ사ㆍ정 협상은 계속되는 예금인출로 다급해진 신한지주측이 전폭적으로 양보해 극적인 대타협을 이뤄냈다는 평가다. 조흥은행 노조는 이번 파업을 통해 신한지주측으로부터 핵심사안인 '3년간 고용보장'을 얻어냈다. 또 통합시 존속법인을 조흥은행으로 하고 은행명칭에 '조흥'을 사용토록 했다. 조흥은행 직원들은 국내 최고(最古)은행인 '조흥은행' 브랜드에 강한 애착을 가져 왔다. 이와 함께 통합까지 3년간 임금을 신한은행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키로 했다. 하지만 이번 파업으로 조흥은행 직원들이 잃은 것도 많다. 가장 큰 것은 고객의 '신뢰'다. 파업 후 조흥은행에서 빠져나간 돈이 총 5조8천억원(단기자금 2조원 포함)에 달하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파업기간동안 삼성이 3천억원, 재경부가 2천억원, 예보가 1천5백억원 등을 각각 인출했다. ◆ 8월말께 신한지주 자회사 편입 조흥은행의 홍석주 행장을 비롯한 임원 13명은 오는 25일 예보ㆍ신한간 본계약 체결을 앞두고 24일 예보에 일괄사표를 제출할 예정이다. 그러나 홍 행장을 포함한 일부 임원들의 사표는 반려될 가능성이 높다. 신한지주 산하에 편입되기까지 명예퇴직 등 기존 임원들이 처리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라응찬 신한지주 회장도 협상타결 후 "홍 행장 임기는 주주총회 절차에 따라 결정될 것이며 정부와의 최종 인수계약까지 한두 달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해 당분간 유임시킬 것임을 시사했다. 신한지주는 본계약과 자금조달, 인수대금 납입 등의 과정을 거쳐 오는 8월말께 조흥은행을 자회사로 편입할 계획이다. 신한지주는 이때까지 홍 행장을 대체할 새로운 은행장과 경영진을 물색하는 한편 조흥은행 직원 일부를 지주회사로 끌어올려 업무 협조체제를 갖추기로 했다. 조흥 출신의 새 행장 후보로는 이강륭 전 부행장, 송승효 전 상무, 이완 전 부행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 통합갈등 불씨 여전해 조흥은행 노조와 신한지주가 극적인 대타협을 이뤄내긴 했지만 양측간 갈등이 언제든 재연될 소지는 충분하다. 합의조항 대부분이 엇갈린 해석을 낳을 수 있는 추상적 표현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고용보장' 부분도 '인위적인 감축을 하지 않는다'고 명시해 인사발령 등을 통한 간접 감원이나 명예퇴직 희망퇴직 등의 길을 열어놓았다. 또 임금을 단계적으로 신한은행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했지만 경영상태에 따라 인상폭이 조정되는데다 3년간의 독립법인 유지도 어차피 합병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독립경영이 가능할지 의문이란 지적도 많다. 합의문에서 신한ㆍ조흥 출신 임원들이 동수로 통추위를 구성한다고 돼 있지만 사실상 신한지주가 이끌어갈 통추위에서 △통합여부 △조흥 명칭 사용 △직급조정 △지점폐쇄 등 핵심사안들을 다시 결정토록 한 점이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철규ㆍ조재길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