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모월 모일.생활용품 업계에서 한바탕 가상잔치가 벌어졌다. 타이틀은 "장수만세".올해로 "성년(만 20년)"이 된 이들을 비롯한 장수 생활용품들을 초청해 축하하는 자리였다. 럭키치약(51년생.LG생활건강),트리오(66년생.애경산업),퐁퐁(72년생.LG생활건강),뽀삐(74년생.유한킴벌리),피죤(78년생.피죤),페리오치약(81년생.LG생활건강),메디안치약(83년생.태평양),하기스기저귀(83년생.유한킴벌리)가 참여했다. 순수 우리 브랜드로 20년이상 우리 곁을 지킨 제품들의 가상 좌담회를 들어본다. -------------------------------------------------------------- 럭키치약=아이구,반갑네들.그러고보니 반백년을 넘긴 내가 가장 원로급이구먼.약관을 맞은 메디안군과 하기스군은 물론이지만 수십 성상 변함없는 다른 동지들 모두 축하하네. 하기스=전 국내 종이기저귀 1호를 달고 나왔지요. 외국 제품도 많이 들어왔지만 20년 동안 줄곧 시장 1위를 지켰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껴요. 아기엉덩이 만큼은 외국산에 내주지 않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지난 3월만해도 AC닐슨 기준으로 점유율이 68%나 됐어요. 메디안치약=잇몸질환 예방 효과를 내세워 태어난 게 엊그제 같은데 20년이 쏜살같이 지나갔네요. 럭키형님의 연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요. 트리오=나이로 따지면 주방세제 원조인 제가 두번째군요. 마흔을 바라보니 말입니다. 그나저나 럭키형님이 아직까지 '현역'이신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럭키치약=허허.무슨 소린가. 모텔이나 여관을 가봐요. 서민들을 위한 숙박업소는 아직도 내 텃밭이라구. 페리오치약=그래도 '국민치약'은 아무래도 저지요. 22년 동안 4억5천만개가 팔렸으니까요.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9.8개씩은 쓴 셈이에요. 트리오=허허-.그럼 나도 '국민 주방세제'로 불러주게.2000년 5억병을 넘기면서 한국 기네스북에 최장수 최다판매 주방세제로 등록됐으니.그거 아나? 국민 위생에 기여한다는 이유로 기생충박멸협회가 우수추천상품으로 뽑기까지 했었지.퐁퐁 동생도 국민세제로 불릴 만하고 말이야. 퐁퐁=그렇지요. 고농축이니 마일드니 신세대 세제들이 세대교체를 별렀지만 시장에선 아직도 우리 둘이 부동의 선두잖아요. 용기를 치장할 필요가 있나,광고를 할 필요가 있나,회사 안에서도 우리같은 효자상품이 없구요. 리필제품이 없는 것도 거의 우리뿐일 걸요. 럭키치약=그러고 보니 두분은 아직도 왕년의 불투명 용기 그대로야.'짝퉁'도 많더라고.트레오 프리오 순한퐁 야자퐁….하하.그런데 피죤도 '국민 섬유유연제' 아닌가? 어느덧 '꺾인 오십'이 다 됐구먼. 피죤=그러게요. 빨래비누로 머리감던 시절에 나와 맨발로 고군분투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생소한 섬유유연제라는 제품을 알리려니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직원들이 양동이에 저를 담아 연쇄점이나 구멍가게를 돌면서 주부들에게 샘플로 퍼주기도 했구요. 그때 돌린 샘플이 트럭 1천2백대에 달했어요. 중소기업에서 나서 대기업을 제치고 시장을 개척하고 지금까지도 절반 이상을 주도하고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뽀삐='그때 그 시절'은 언제 돌이켜도 재미있어요. 제가 세상에 나올 때는 부잣집에서나 황갈색 화장지를 썼고 보통 사람들은 신문지나 달력을 구겨서 썼거든요. 사람들은 저를 보고 이렇게 좋은 것을 화장실에서 어떻게 쓰냐며 식탁이나 거실에 두고 사용했지요. 오죽하면 회사에서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화장실 근무를 명함' 같은 광고캠페인까지 했겠어요. 여하튼 저 역시 지금까지도 시장 선두를 놓치지 않고 있으니 '국민 화장지'로 손색없지요? 럭키치약=그래.우리 모두 국민들의 삶과 함께한 국민 생활용품이라고 할 만 해.앞으로 더욱 분발하자구.해외 유명브랜드들처럼 1백년 넘어도 생명력을 잃지 않도록 말이야. 일동=만수무강 합시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