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덩이 속에서 우리 직원들이 살아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럴줄 알았으면 마지막 포옹이라도 더 진하게 하고 오는건데..." 한국인으로서는 마지막으로 지난 18일 이라크를 탈출한 장연 서브넥스테크놀로지 사장(49)은 더이상 말 잇기를 힘겨워 했다. 걸프전이 끝난 직후인 1993년부터 11년째 이라크에서 무역업을 해온 그는 후세인의 큰 아들 우다이와도 친분을 갖고 있다. 22일 귀국한 그를 통해 들은 생생한 이라크 소식을 정리한다. ----------------------------------------------------------------- 헤어질 때 마지막으로 본 이라크 직원들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직원들은 일렬로 서서 내가 탄 요르단행 택시에 바가지로 물을 부으며 울부짖었다. (이라크에서는 이별을 할 때 차에 바가지로 물을 붓는 관습이 있다. 조심해서 돌아갔다가 꼭 다시 돌아오라는 의미다) 차창 위로 쏟아지는 물을 타고 아른거리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비겁하게 나만 살자고 도망치는 것 같았다. 나도 결국 눈물 범벅이 되고 말았다. "다시 올 때까지 다들 꼭 살아있어야 돼." 18일 새벽 4시(현지시간).TV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이 최후통첩을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덜컥 겁이 났다.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마는건가. 서둘러 사무실에 들렀다. 그러나 직원들은 의외로 담담했다. 전쟁에 이력이 나서일까. 모두들 묵묵히 제 할일을 하고 있었다. 떠날 사람은 떠나라고 이라크 정부에서 통보했지만 이라크인들은 큰 동요가 없었다. 남의 손에 내 나라를 넘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라크 친구들은 항상 말한다. "후세인이 독재자인 것은 우리도 잘 안다. 하지만 그가 아니면 미국이라는 다른 나라가 우리를 점령할 텐데 어떻게 후세인을 지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미국의 폭탄 세례에 대항해 이라크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조그만 쇠곤봉을 집안에 배치하는 것 뿐이었다. 지상전에 대비해 미군들이 집안으로 들어오면 때릴 수 있도록 곤봉처럼 만들어 놓은 쇠파이프가 며칠새 불티나게 팔렸다. 수천km를 날라오는 거대한 미사일과 1m도 채 안되는 쇠곤봉. 기가 막힐 노릇이다. 오전 9시 바그다드 시청으로 갔다. 상용차 부품 납품건으로 최종가격을 제시하기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 모두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계약건 담당 공무원이 나를 보더니 몹시 놀라워하는 표정이었다. 외국 기업인들은 이미 다 떠난 줄 알았는데 아직 남아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당신네들도 다 일하고 있지 않느냐고 웃으면서 말했다. 저녁이 되면서 전쟁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주변에 이방인은 거의 눈에 띄질 않았다. 떠나야 될 시간이었다. 남아 있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미국 여권을 가지고 있는 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친구들이 얘기했다. 결국 그날 5년 동안 애용하던 호텔을 체크아웃했다. 무하네드(현지 직원)와 함께 요르단으로 향하는 택시(이라크와 암만을 잇는 택시들이 평소에도 많이 운영되고 있다)에 몸을 실었다. 그날따라 세찬 모래폭풍이 불어 차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평소 10시간이면 오던 길이 15시간이나 걸렸다. 국경을 통과하는 순간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안도와 함께 두고 온 이라크 친구들에 대한 걱정이 뒤섞였다. 19일 아침 요르단 암만에서 바그다드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다행히 그때만 해도 전화는 끊기지 않았다). 북부 키르쿠크 유전지역에 있는 한 회사에서 상용차 부품 관련 계약서를 받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바그다드에서 직원이 키르쿠크로 직접 가서 계약서를 받은 뒤 그날 밤 요르단으로 오는 택시편에 보냈다. 계약서가 국경을 넘을 즈음인 20일 새벽 이라크로 향하는 미사일이 하늘을 갈랐다. 그리고 그날 아침 8시 나는 바그다드에서 날라온 계약서를 손에 넣었다. 계약서에서는 아직도 직원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코끝이 찡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사실상 이라크 정부가 전쟁 전 공식적으로 외국 기업과 체결한 '마지막 계약서'를 건네받았다. 20일 동이 트자마자 바그다드로 연락했다. 다행히 무사하다며 걱정말라는 얘기가 전화기 저편에서 흘러나왔다. 이라크 사람들 대부분이 낮에는 정상적으로 업무를 하고 밤에는 전쟁에 대비해 사무실 지하 벙커에서 잠을 청한단다. 다음날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후세인의 큰 아들 우다이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뉴스가 TV에서 흘러나왔다. 우다이는 이라크 올림픽 위원이어서 이라크 태권도협회의 일을 담당하고 있던 우리 회사와도 관련이 있었다. 급한 마음에 직원들에게 전화를 해보니 "아직 살아있다. 일부에서 흘린 소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후세인도 아직 멀쩡하다는게 그들의 얘기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의 공격 수위가 점점 높아졌다. 온통 불바다가 된 바그다드 시내 모습이 TV 화면에 비쳤다. 대통령궁, 공화국 수비대 건물 등 낯익은 건물들이 잇따라 폭격으로 불타고 있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직원에게 전화를 했다. "금방 폭격이 시작됐어요."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뚜우뚜우' 갑자기 전화가 끊겼다. 그 이후 지금까지 전화는 불통이다. 21일 새벽 로얄조르단항공을 타고 방콕으로 향했다. 같이 탈출한 이라크 직원 무하네드는 비자 발급이 지연되는 바람에 요르단에 남았고 나는 홀로 전쟁터를 벗어났다. 비행기에서도 온통 회사와 직원들 걱정에 단 한순간도 눈을 붙일 수 없었다. 22일 아침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서도 사람들은 온통 전쟁 얘기다. 바그다드가 곧 함락될 것이라는 말도 심심찮게 나온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미국이 바그다드를 함락시키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모래폭풍도 문제이지만 이라크 사람들이 수도를 호락호락 넘겨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화국 수비대들은 시가전을 앞두고 시내 곳곳에 흩어져 민가에 숨어 있다. 결국 그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지상전으로 가야만 하는데 그렇게 되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나는 미사일이 발사되는 걸 볼 때마다 두려움에 떨 이라크 아이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이라크 어린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전쟁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어 조그만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란다. 이런 아이들이 저 불바다에서 얼마나 놀라고 있겠는가. 그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빨리 이 끔찍한 전쟁이 끝났으면 한다. 정리=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