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건(高 建) 총리 지명자가 오는 20,21일 실시되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국민 앞에 충분히 해명하고 청문회의 관문을 무사히 넘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나라당은 청문회에서 고 지명자 본인과 가족의 병역면제,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 사망과 80년 5.17 계엄확대조치 당시 행적, 87년 6월 항쟁 당시 강경진압 건의설, 수서 특혜분양 연루의혹 등을 집중 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국정수행 능력과 도덕성, 청렴성을 적극 검증하되 야당의 인신공격성 공세는 차단한다는 입장이다. 다음은 청문회에서 다뤄질 주요 쟁점과 고 지명자측의 해명. ◇본인 병역문제 = 한나라당은 고 지명자가 58년 대학 재학중 현역판정을 받았으나 60년 대학 졸업후 징집되지 않다가 62년 개정 병역법에 따라 보충역에 편입됐고, 다시 71년(당시 32세)에 고령으로 면제 처분을 받은 과정을 놓고 `고의 회피'가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고 지명자는 해명자료에서 "61년 12월 고등고시에 합격한뒤 입영영장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당시에는 4.19와 5.16 등 특수상황때문에 병역기피자들이 한꺼번에 입대하는 통에 대기중인 다른 사람들처럼 저에게 영장이 나오지 않았다"며 "병역이나 입영을 기피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고 지명자는 "9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회 국방위에서 병적기록을 열람한 결과영장이 발부되지 않았음을 뜻하는 `영장미하령(令狀未下令)'으로 확인됐고, 야당의원들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며 "병역기피 사실이 있었다면 신규 공무원으로 임용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98년 당시 이상호 병무청장은 국회에서 "병역관련 서류를 검토한 결과 (고 지명자에게) 영장이 발부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증언했다. ◇차남 병역문제 = 고 지명자의 차남 휘(輝.40)씨가 지난 84년 7월 징병검사에서 1급 판정을 받았으나 87년 5월 재검사에서 `현대사회적' 질병으로 5급 판정을 받아 면제받은 데 대한 의혹도 제기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고 지명자는 "세 아들중 큰아들과 셋째아들은 실역을 마쳤으나, 둘째아들은 84년 서울공대 4년 재학중 신검에서는 `현역적격' 판정을 받았지만 86년대 학원 재학중 질병(현대사회병)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약 1년간 입원치료를 받고 재검에서 5급 판정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고 밝혔다. 고 지명자는 그러나 "이제 이 아들이 처자를 거느린 가장인 만큼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는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해 병명은 공개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부모로서의 심경"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언론이 `고 지명자의 내무장관 재직시 차남이 병역면제를 받았다'며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 총리실측은 "차남은 5급 판정을 받았다가 87년 5월2일자로 면제됐고, 고 지명자는 그해 5월26일자로 내무장관에 취임했다"고 반박했다. 고 지명자의 장남은 6개월짜리 석사장교를, 3남은 체중미달로 방위복무를 했다. ◇친형의 병역면제 = 일부 언론은 '고 지명자의 형 석윤씨가 51년 고등고시 행정과를 합격하고 52년 상공부 사무관으로 임용됐는데, 석연찮은 이유로 병역을 마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고 지명자측은 "형 석윤씨는 행시와 사시 양과에 합격해 군 법무관 근무가 가능했으나, 53년 전시상황에서 상공부 전시산업물자 동원업무를 담당하는 행정상 `주요원'으로 대체근무해 병역을 면제받았다"고 밝혔다. ◇10.26 및 5.17 당시 잠적설 = 한나라당은 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했을 당시 청와대 정무2수석 비서관으로 재임중이던 고 지명자가 3일간 나타나지 않았다며 행적에 의혹을 제기했다. 이는 98년 지방선거 당시 노재현 전 국방장관이 "장례를 치를 때까지 고 지명자를 보지 못했다"고 주장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 고 지명자는 "79년 10월26일 저녁 비상연락을 받고 가장 먼저 청와대 본관에 도착, 꼬박 사흘밤을 새면서 국장(國葬)을 준비했고, 김종필 당시 공화당 의장이 직접 장의차 모델을 그려 보내줘 자동차회사에 문의하기도 했다"며 "경황이 없어 기억하는 사람이 적을지는 몰라도 자리를 비웠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반박했다. 한나라당은 또 80년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때도 1주일간 출근하지 않은 점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으나, 고 지명자는 "80년에는 비상계엄 확대가 군정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판단했고 절대 찬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곧바로 사표를 내고 칩거했다"고 밝혔고, 황호황 당시 치안비서관도 사표 제출 사실을 증언했다. ◇부마사태 및 6월항쟁 진압건의설 = 한나라당은 고 지명자가 79년 부마사태때 청와대 정무수석으로서 위수령 발동을 건의했고, 87년 6월 호헌반대 투쟁 당시 내무장관으로서 명동 성당에 농성중인 시위대를 강제해산하도록 건의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고 지명자측은 "79년 부산에서 위수령 발동을 문의해왔지만, 군이 나오는 불행한 사태를 막았다"고 밝혔다. 고 지명자는 87년 6월 항쟁에 대해서는 "농성중인 시위대를 강제해산하라는 대통령 지시가 있었지만, 올림픽 개최를 앞둔 상황에서 국가 이미지가 손상되고 교황이 한국을 야만국이라고 비난한다면 경제적으로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으며, 전국의 신부와 수녀들이 거리로 나오게 할 수도 있다며 반대했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 최인기 당시 내무부 차관보는 "고 지명자는 시위대에 대한 공권력 투입의 경우 충돌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토록 했고, 그 맥락에서 명동성당 공권력투입에 반대했다"고 밝혔다. ◇수서특혜 관련설 = 지난 90년 한보그룹의 수서택지 특혜분양 당시 서울시장이던 고 지명자가 개입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91년 2월 고 지명자가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직후 박세직 당시 서울시장과 책임공방을 벌이면서 쟁점화됐던 사안이다. 고 지명자는 "한보와 주택조합측의 특별분양 수의계약 요구를 3차례에 걸쳐 불가처분을 내렸다"며 "청와대 비서실로부터 서울시에 가해오는 압력의 강도가 갈수록 높아졌으나 끝까지 거부하다가 타의로 시장직을 물러났다"고 밝혔다. ◇환란책임론 = 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당시 국무총리로서 한국은행측으로부터 환란 관련 보고를 7차례나 받았기 때문에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고 지명자는 "외환위기를 정부가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데 대해 지금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며 "그러나 총리가 주요 경제정책의 결정과정에 참여하지 못해온 것이 우리 정부의 오랜 관행이었고, 앞으로는 총리가 참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고 말했다. ◇업무스타일 = `행정의 달인'이라는 평가와 `무소신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엇갈린다. 고 지명자가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중요 현안에 대해서는 반드시 관련 당사자들을 모두 설득시킨뒤 업무를 추진해왔고, 이 때문에 민감한 현안에 대한 결정을 지연시켰던 점을 두고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동시에 존재하는 셈이다. 고 지명자는 서울시장 재직시절 50여개의 위원회를 만들어 '위원회 시장'으로 불릴 정도로 이해 당사자의 의견 수렴을 중시하는 행정을 펴왔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 기자 mange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