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신주쿠역 동쪽 출구 앞에 자리잡은 일본 최대의 서점 '기노쿠니야' 8층 아동 교육 코너. 창문쪽 서가를 초.중학교 수험서적과 참고서들이 빼곡이 메우고 있다. 명문 사립중학은 물론이고 제법 괜찮다는 초등학교라면 학교 이름을 표지에 새긴 문제집이 어김없이 꽂혀 있다. 초등학교 면접시험 요령을 가르쳐 주는 가이드 북까지 나와 있다. 아동용 경제관련 서적은 없느냐고 물었다. 난감한 표정을 짓던 여직원, 한참을 헤매고 난 뒤 정반대쪽 매장 구석에서 '경제를 쉽게 알 수 있는 어린이 뉴스' 등 몇 권을 꺼내 놓는다. 모두 2000년 이후에 출판된 것들이다. 숨어 있다시피 한 이들 책의 옆 매장에는 '정복! 플레이스테이션2' '최신 게임소프트 백과' 등 수천권의 게임 관련 서적이 10여평은 됨 직한 공간을 보란 듯이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청소년 경제교육은 사각지대나 다름없지요. 얼마전부터 그 필요성에 눈을 뜬 단체와 기관, 전문가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제교육은 이제 막 불붙기 시작했다고나 할까요." 청소년 경제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히라오카 히사시 닛코 파이낸셜 인텔리전스 부이사장(57)은 "일본의 청소년 경제교육 현주소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앞날에 대한 각오가 혼재해 있다"고 말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인 문화'를 키워 왔지만 아이들에게 너무 빨리 돈을 알게 할 필요는 없다는게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 그런 분위기가 청소년들을 경제와 담을 쌓고 지내게 만든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그의 진단대로 일본의 학교내 경제교육은 여전히 부실하다.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사회 시간에 몇 가지 입시용 경제지식만 익혔을 뿐 실제 경제생활에서 이뤄지는 현상을 배운 기억은 없습니다." 중국 관계 사업으로 작은 회사를 꾸려가는 니시오카 시게루 사장(30)의 고백이다. 회사원 스에다케 미에씨(26)도 마찬가지다. 명문 여대를 졸업했지만 역시 중.고교 시절 경제라는 이름으로 별도의 수업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일본의 청소년 경제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중 하나는 전문 교사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학교가 사회나 공민 시간에 경제를 가르칩니다만 담당 교사의 95% 이상이 지리나 역사를 전공해 효과적 수업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히라오카 부이사장은 경제 흐름을 정확히 이해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담당 교사부터 풍부한 지식과 정보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중앙은행이나 증권거래소를 잠깐 견학하는 정도로는 교사들의 능력이 하루아침에 달라지기 어렵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경제교육이 우선돼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본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경제대국이지만 젊은이들의 창업이 유독 부진하고 개인 파산 신청자가 속출하고 있는 현실은 어린 시절 경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데도 이유가 있다는 자성이 일고 있어서다. 도쿄의 시나가와 구는 청소년들이 실제 생활에서 일어나는 경제활동을 체험할 수 있도록 관내 초등학교의 빈 교실을 개조, 모의 상점과 회사들을 설치하기로 지난해 말 방침을 확정했다. 시나가와 구는 '스튜던트 시티'라고 부르는 이 교실에서 아이들이 회사를 설립하거나 상점을 운영해 보도록 할 계획이다. 체계적인 경제교육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도야마현상공회 청년연합회도 지난해 여름 두달간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벤처키즈 챌린지'라는 행사를 열었다. 이는 어린이들이 스스로 만든 상품을 직접 판매하고 결산하는 프로그램으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와세다대 대학원의 오에 다케루 교수와 졸업생들이 힘을 합쳐 세운 벤처기업 '셀프 윙(Self Wing)'은 조기 기업가교육이라는 독특한 프로그램. 이 회사는 대학원 교재를 초등학생과 중학생 눈높이로 낮춰 전용 프로그램으로 개발했다. 이 회사의 경제캠프는 학생들에게 회사 설립부터 마케팅 생산 재무관리에 이르는 다양한 과정을 경험토록 하면서 청소년과 학부모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의 청소년 경제교육이 불이 붙었다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급한 것이 국민적 컨센서스다. 지난 95년 도쿄증권거래소의 경제교육이 대표적인 사례. 거래소는 모의 주식투자게임을 중.고교에 보급시키려 했다가 오사카 변호사회 등으로부터 '판촉활동이 아니냐'며 거센 항의에 부딪쳐 교육을 도중에 그만둬야 했다. 모의 주식게임을 실시중인 도쿄공업대 부속공고의 한 교사는 "보호자 전원으로부터 승낙서를 받아야 했다"며 "지금도 일부 동료교사들은 돈버는 법을 꼭 가르쳐야 하느냐며 눈을 흘긴다"고 개탄했다. 히라오카 부이사장은 "청소년 경제교육은 올바른 가치관과 합리적 소비생활을 몸에 익혀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며 "한국도 국민적 컨센서스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