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악마와 촛불시위를 보면서 우리 민족,특히 젊은 세대의 무한한 가능성을 몸으로 느꼈습니다.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목소리를 냈지만 불미스런 사고 한 건 없었습니다.특히 폭력이 아닌 평화적 시위방법으로 등장한 촛불이 그렇게 이뻐 보일 수 없었습니다." 시인이자 사상가인 김지하씨(62)가 칼럼집 '김지하의 화두-붉은 악마와 촛불'(화남)을 펴냈다. "월드컵과 촛불시위때 광화문과 시청을 가득 메운 젊은이들은 가깝게는 87년 6월 항쟁을 거쳐온 이들이지요.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동학운동과 삼일운동,4·19혁명을 주도한 이들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런 점에서 폭풍과도 같았던 지난 6월을 '6월 개벽'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는 뜨거운 불과 태양이던 붉은 악마가 달빛이자 고요한 물인 촛불로 변한 데에서 '혼돈과 모순의 통일'이라는 주역의 원리를 이끌어낸다. 모순된 것을 하나로 껴안을 수 있는 젊은 세대는 그 자체로 21세기의 가능성이라는 게 김씨의 진단이다. 이들 젊은 세대를 그는 '늘손'(좋아질 가능성)있는 세대라고 불렀다. 그는 또 이러한 젊은이들의 열기를 두고 '집단적 광기' 운운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책은 3부로 나뉘어 모두 11편의 글이 실려 있다. 1부 '붉은 악마,그리고 동북아 허브론'에는 '6월개벽'의 역사적 의미와 그 역동성,문화적 코드를 논리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2부 '문예부흥과 문화혁명'에서는 요즘 신세대(N세대)의 문화적 특성으로 '복고'와 '판타지'가 출현한 배경과 의미를 밝히고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3부 '촛불'은 올 1월1일 새해 벽두에 쓴 미발표 신작원고 모음이다. 김씨는 촛불시위의 의미를 진혼과 초혼의 정치적 상상력이자 영적인 사건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그는 주역의 간태합덕(艮兌合德:산과 연못이 서로 돕는다는 의미로 향후 한국과 미국이 조화롭게 도와 나갈 것을 뜻함)을 예로 들면서 촛불시위가 지나친 반미로 나가서는 안된다고 경계했다. 유신시대 '오적(五敵)'으로 사람들에게 '김지하'라는 이름 석자를 각인시킨 그는 "지금도 그같은 시를 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쓴다면 오천적 정도를 써야 정상이겠지만 이제는 젊었을 때처럼 그렇게 꼬장꼬장하지 못해 그런 시를 쓸 자신이 없다"며 웃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