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손석춘(43)씨가 장편소설「유령의 사랑」(들녘刊)을 냈다. 첫 소설 「아름다운 집」에 이어 2년만에 내는 장편소설이다. 신작 소설은 공산사회주의 국가의 붕괴,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돌이킬 수 없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대한 치열한 반성을 담고 있다. 주인공 한민주는 진보 성향을 가진 오십대의 중견 언론인. 빨치산의 유복자로 태어난 그는 기자 초년시절인 1970년대초 독재정권에 저항하다가 해직된 적이 있으며, 1987년 6월 항쟁 후 국민주 모금으로 설립된 신문의 이름난 논설위원이다. 그는 어느 날 술자리에서 대학 후배이자 보수언론의 논설위원 류선일로부터 "당신은 위선자야! 그저 책상 앞 마르크스주의자이지"라거나 "선배의 칼럼은 지금 위기야. 그것은 그저 좌파 상업주의에 기대 적당하게 인기관리를 해나가는 포퓰리즘에 지나지 않다"는 등의 공격을 받는다. 심신이 지친 한민주는 한달간 휴가를 내 칼 마르크스의 무덤이 있는 영국 런던하이게이트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우연찮게 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보른슈타인을 만나 칼 마르크스의 사생활과 관련된 비밀유서를 건네받는다. 소설은 칼 마르크스의 인간적 결함으로 치부돼온 하녀 예니와의 사랑, 그녀와 사이에 태어난 아들 데무트와의 관계 등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마르크스가 하녀에게 평생 월급 한 푼 주지 않고 착취했다거나, 그것도 모자라 성적 착취까지 감행에 얻은 아들을 친구 엥겔스에게 보내 평생동안 모른척 했다는 일설을 비밀유서를 통해 반박한다. 작가는 마르크스와 하녀의 사랑을 지고지순한 프롤레타리아적 연애의 전형으로 몰고 간다. 이는 주인공 한민주와 노동자 고수련의 관계를 통해 되살아난다. 그러나 한민주와 고수련의 관계는 불륜에 이르지 않는다. 대신 한민주의 아들 혁이 고수련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의식을 쌓는다는 설정을 통해 칼 마르크스의 유령(혁명이념)이 시대를 초월해 전승되는 것을 보여준다. "소설이 죽었단다. 우울한 진단이다"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영상매체에 떼밀려 힘을 잃어가는 활자매체의 운명, 여기서 비롯된 이념의 쇠퇴와 전망부재의 현실을 동일선상에 놓고 이야기를 펼쳐간다. 소설 밑바닥에는 칼 마르크스의 사상이 숨쉴공간을 허용하지 않았던 한국사회의 이념적 편향, 보수언론의 '색깔론' 등에 대한 비판의식이 일관되게 흐른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칼 마르크스는 죽지 않았다"고 외친다. 여기에는 이념시대를 통과해온 청년기 열정을 잊지 못하는 지식인의 향수가 묻어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너지고 해체돼 자본주의의 시궁창에 내던져진 마르크스의 정신이 언젠가 다시 불기둥으로 솟아오를 것으로 믿는 작가의 목소리에는 유토피아에 대한 인간의 끈질기고도 강렬한 희망이 깃들어 있다. 368쪽. 9천500원.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