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은 계미년(癸未年), 양띠 해다.

'양처럼 순하다'는 말이 있을 만큼 양은 성질이 순박하고 온순하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면서도 싸우는 일이 거의 없어 평화의 상징으로 통한다.

이라크에 전운이 감돌고 북한 핵문제가 세계적 관심사가 돼있는 '각박한' 상황에서 맞는 '양의 해'는 그래서 의미가 더 각별하다.

사람이 양을 길러온 것은 약 1만년 전부터라고 한다.

동양에서는 영험스러운 동물로 여겨져 소 돼지와 함께 제물로 쓰였고, 서양에서도 성서에 맨 처음 등장하는 동물이 양이다.

성서에는 5백번 이상 양이 언급돼 있다.

양은 그러나 우리 역사와는 인연이 많지 않은 동물이다.

목축이 성하지 않아 목양에 관한 이야기 역시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삼한시대에 양을 식용으로 썼다는 이야기가 있고, 낙랑시대에 만든 양 모양의 장식품과 원주 법천리 고분군에서 나온 양모양의 청자 등이 일부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림으로는 공민왕의 '이양(二羊)그림'과 김홍도의 '금화편양도(金華鞭羊圖)' 등이 전해온다.

고려 때 금나라에서 면양(綿羊)을 들여와 조선 때까지 사육했으나 풍토병 등으로 인해 성과는 좋지 않았다.

호랑이나 말 등 다른 띠 동물에 비해 양과 관련된 민속도 적다.

다만 남에게 해를 끼칠 줄 모르는 착하고 여린 성질 때문에 착함, 의로움, 아름다움 등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져 왔다.

상형문자인 '羊(양)'에서 맛 미(味), 아름다울 미(美), 착할 선(善) 등의 한자가 파생된 것도 이런 까닭이다.

또 글자 모양이 상서로울 상(祥)과 같고, 소리가 밝을 양(陽)과 같아서 길상의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초야에 묻혀 지내던 시절, 꿈에서 양을 잡으려 하자 뿔과 꼬리가 몽땅 떨어져 놀라 잠에서 깼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이 꿈 이야기를 무학대사에게 했더니 곧 임금이 될 것이라는 해몽이 나왔다.

한자의 '羊'에서 양의 뿔과 꼬리에 해당하는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떼고 나면 임금 왕(王)이 남게 된다는 것.

이때부터 양꿈은 길몽으로 풀이돼 왔다고 한다.

양은 또한 재물, 종교인, 선량한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양띠는 부자가 되지 못한다'는 속담은 양띠가 양처럼 너무 정직하고 맑아서 돈을 벌기 어렵다는 얘기다.

때문에 양띠의 직업은 대부분 교수나 교사, 언론인, 문예계 등에 알맞은 반면 장사꾼이나 정치가, 사업가 등은 잘 맞지 않는다고 한다.

사색을 즐기며 간섭받기를 싫어해 동서양을 통틀어 학자는 양띠가 제일 많다는 '설'도 있다.

우리 민족은 양과 염소를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고 함께 일컬어와 '양띠'와 '염소띠'를 혼용해 왔다.

흔히 양이라고 하면 면양(綿羊)과 산양(山羊)을 포괄하는 경우가 많지만 면양은 양,산양은 염소라고 하는게 바람직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둘 다 포유류 우제목 소과 동물이지만 형태와 특성이 다르다는 것.

양은 털이 섬세하고 곱슬거리는 반면 염소의 털은 거칠고 직선이다.

그러나 양이든 염소든 인간에게는 매우 긴요한 동물이다.

고기와 젖, 털과 가죽 등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이용하기 때문이다.

양가죽은 고급피혁으로 장갑, 구두, 옷, 책표지 등으로 두루 이용되고 양털은 보온성이 좋고 질겨서 고급 옷감이나 솜의 대용으로 쓰이는 모직물의 원료가 된다.

양젖은 우유에 비해 단백질 지방 회분이 풍부해 허약체질인 사람에게 좋다고 한다.

양은 약재로 이용되기도 한다.

한의학에서 양은 양(陽)을 돋우는 식품으로 피를 따뜻하게 하고 체력을 보충해 준다고 했다.

염소 또한 보양을 위한 약으로 많이 이용돼 흑염소의 경우 허약체질, 폐결핵, 위장병, 양기부족, 산후 및 병후조리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순하고 착하며 희생적인 양이지만 쥐와는 상극이다.

쥐는 양의 배설물이 조금만 묻어도 몸이 썩고 털이 다 빠진다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쥐띠와 양띠는 서로 회피관계다.

반면 토끼띠, 돼지띠와는 '해묘미삼합(亥卯未三合)'이라는 상생의 관계다.

토끼가 돼지의 분비물 냄새와 힘을 부러워하고 양의 초연함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토끼의 코가 양의 코와 돼지의 코를 반씩 닮았다고도 한다.

순하고 착하며 어진 동물 양, 계미년에는 양처럼 살아보면 어떨까.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 도움말=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