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2일로 엔론이 파산한 지 1년이 됐다. 이른바 '신경제(New Economy)'의 선도자로 자임해왔던 거대 에너지기업은 지난해 12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파산'이란 기록을 남긴 채 영원히 사라졌다. 엔론이 파산한 이후에도 기업 관련 부정사건들은 봇물 터진 듯 이어졌다. 월드컴 글로벌크로싱 타이코 아델피아 등 유명한 기업들이 잇달아 스캔들에 연루됐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회계법인인 아더앤더슨은 결국 도산하는 운명을 맞아야 했다. 결과는 더욱 참혹스러웠다.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면서 미 증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길고도 깊은 '하락장'을 경험해야 했다. 엔론 사태는 미국은 물론 세계경제에도 큰 시련을 준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도 빨랐다. 미국 정치인들과 관계 당국은 기업부정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각종 방안을 모색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 7월 대국민 연설을 통해 "기업들이 회계 장부를 조작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것을 엄단하겠다"고 공표했다. 미 의회는 서둘러 기업개혁법인 '사반스-옥슬리법'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투자자들이 더 안전해졌는가. 대답은 불행히도 '노(No)'이다. 관련 법이나 규제가 늘었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실천이 중요하다. 오히려 관련 법이 과도하게 늘어나 기업지배구조 개혁 등에 대한 논의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회계법인에 대한 개혁작업도 여전히 미진한 편이다.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한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가 기업개혁을 천천히 진행시키려는 의도를 보이는 것도 문제다. 이달 들어 하비 피트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과 윌리엄 웹스터 기업회계감독위원회 초대 위원장이 인사파문에 시달리며 나란히 사임해 그 한계를 드러냈다. 회계 관행과 관련해서는 고무적인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미국 일반회계기준(GAAP)이 국제적 표준안에 부합되도록 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회계사들이 회계감사를 실시할 때 GAAP의 복잡한 회계 규칙에 얽매이기보다는 원칙 자체에 철저해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지배구조를 통해 기업 부정을 사전에 방지하는 일이다. 사반스-옥슬리법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또는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재무제표에 대한 진실서약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 역시 투자자들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는 미약한 조치로 평가되고 있다. 따라서 기업 경영진 사이의 견제와 균형장치를 확고히 마련해 놓는 것이 절실하다. 유럽의 경우처럼 회장직과 CEO직을 분리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엔론 사태로 투자자들도 많은 것을 배웠다. 기업 경영자들은 언제나 '탐욕(greedy)적'이며,감사를 벌이는 회계사들도 '오류를 범할 수(fallible)'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증시에서 두 자릿수의 수익률을 기대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증권시장을 면밀히 '살피는 일(scrutiny)'과 항상 '의심하는 자세(questioning)'를 갖추는 것만이 투자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정리=유영석 기자 yooys@hankyung.com -------------------------------------------------------------- ◇이 글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12월2일자)에 실린 'Enron a year on; Investor self-protection'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