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간에 지난 반세기 동안 끊어진 도로와 철도를 연결하던 작업이 양측 1백m씩 남겨놓은 상태에서 돌연 중단되었다. 발단은 비무장지대 지뢰제거 작업 과정에서 북측이 정전협정을 무실화하고 유엔사를 배제하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더 이상의 협상에 응하지 않음으로써 연내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을 목표로 추진되던 사업이 불투명해진 것이다. 이 문제는 남북간 화해와 교류협력의 상징성과 함께 금강산관광사업의 활성화 및 향후 개성공단의 건설과도 직결된 문제여서 더욱 큰 파문을 낳고 있다. 북한이 당초 입장에서 한걸음도 양보없이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은,남북간 도로 철도 연결사업을 통해 그들이 오랫동안 추구해 오던 유엔사 무력화 시도 뿐만 아니라,이 문제를 구실로 전통적인 한·미 동맹체제를 이간시키려는 의도가 있다. 동시에 금강산관광 및 각종 각급의 남북간 교류협력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을 북한 군부가 상호 검증에 대한 유엔사의 입장을 빌미로 제동을 걸고 있을 수도 있다는 추정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정부와 군 당국이 북한체제의 본질을 간과하고 특히,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제기된 이후 변화된 정세하에서도 기존의 햇볕정책에만 매달려 정확한 상황인식과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데 있다. 북한은 햇볕정책이 국내외의 화려한 찬사속에 추진될 시점에도 비밀리에 핵을 개발해 왔고,민족간의 화해 및 교류협력이라는 표면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내면적으로는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의지와 역량을 꾸준히 키워 왔다. 동시에 미국은 9·11 이후 북한문제를 단순히 한반도문제의 차원을 넘어 반테러,악의 축이란 틀 속에서 접근하면서 북한 핵문제를 과거 1993∼94년과는 전혀 다르게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북한 미국의 입장과 태도,그리고 국제 현실이 급속히 변화하고 있음을 간과하고 유화적 햇볕정책을 교조적으로만 이행해 결국 북한의 요구에 양보만을 거듭한 끝에 이제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러나 북한은 검증관련 협상에 임하지 않음으로써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 사업을 중단시켰음에도 남북간 끊어진 도로와 철도를 연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포기하지는 않고 있다. 또 시행 5년째를 맞고 있는 금강산관광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금강산지구를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남북간 도로 및 철도 연결,금강산관광사업,개성공단 건설과 같은 남북 경협사업은 남북한 모두에 이익이 되는 사업으로서 북한도 결코 쉽게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북한 핵개발 의혹에 대해 북·미간 대립이 지속되고,12월부터는 대북중유공급이 중단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아직까지 대미 성명전 이상의 구체적 행동은 취하지 않고 있다. 북·일협상이 난관에 봉착하자 미사일시험발사 재개 가능성을 시사한다든지,북한내 유통 외화를 달러에서 유로로 전환한다는 발표 등 몇가지 행동 조치를 모색하고는 있으나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극단적인 행동은 자제하고 있는 것 같다. 남한의 대선이 불과 한달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남한 국민들을 자극할 행동 역시 아직은 취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북한측의 일련의 움직임은 북한 핵개발의혹과 남북 도로 및 철도 연결사업의 중단이라는 부정적 상황에서도 문제가 꼭 절망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군부가 관장하는 검증에 관해서는 강경 자세를 보이고 있는 북한이 금강산지역을 관광특구로 지정해 남한의 관광객을 대거 유치하려는 자세로 볼 때,북한내부에서도 개방에 따른 복잡한 이해 관계가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 정부는 햇볕정책의 가시적 성과로서 남북간 철도와 도로를 임기내에 연결하려는 데 집착하지 말고,이 문제가 갖고 있는 정치적 군사적 국제적 문제의 복잡성과 심각성을 면밀히 검토해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문제 해결에 임해야 할 것이다. 반세기 동안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는 중차대한 사업에 첫 삽을 뜬 것만도 이미 충분히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yoohy@korea.com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