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우 화백(76)은 한국화단에서 '아방가르드(전위)' 작가로 평가받는 원로다. 서울대 미대 시절부터 그는 한국화의 전통요소인 지필묵(紙筆墨)에서 붓과 먹은 안중에도 없었다. 1966년 서울 신세계화랑에서 연 첫 개인전에서 그는 완전 추상의 한지작품을 선보여 파란을 일으켰다. 붓과 먹을 사용한 흔적은 없고 형체도 없는 한지 추상작은 당시로선 파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지에 추상화면만을 고집한다. 권 화백이 오는 29일부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오브제 작업을 시작한 지난 95년 이후 한지로 일관하면서 평면으로 회귀한 근작 '무제' 시리즈 50여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1998년 '올해의 작가'로 선정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가진 이후 가장 규모가 큰 개인전이다. 그는 한지를 화판에 여러 겹 바르고 마르기 전에 문지르거나 긁어낸다. 또 때로는 화면에 구멍을 뚫기도 한다. 채색할 때는 화면 뒷면에서도 칠해 색감이 앞으로 번져 나오게 한다. 종이에 그린다기보다는 '종이 자체로 작품을 만든다'는 개념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셈이다. 독자적인 종이작업으로 시작한 그는 1980년대 파리 체류시절에는 채색을 도입하고 90년대에는 오브제 작업을 시도했다. 최근에는 다시 평면에 대형 형상들을 보여주는 포름(Form) 작업으로 끊임없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오브제 작업은 못 옷걸이 막걸리병 등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재료를 패널에 놓은 후 한지로 덮어 씌우는 것으로 입체감이 돋보인다. 그는 전통 한국화에서 벗어나 한지 추상작업만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의 예술적 독자성을 찾고 싶어서였다"고 설명한다. "한지에서 배어나는 백색은 서양 안료나 유채의 백색과는 다릅니다. 기름기라고는 전혀 없는 소담한 맛과 해맑은 빛이 담겨 있죠." 미술평론가 김미경씨(강남대 교수)는 그의 한지작업을 조선 백자의 미에 빗대 '소예(素藝)'라고 설명한다. 그의 최근 작품들은 갈색 캔버스에 갖가지 형태의 종이를 한 겹 혹은 여러 겹으로 붙여 새로운 형상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오브제를 통한 입체에서 형태를 이용한 '평면의 시대'로 회귀하지만 기법은 꾸밈이 전혀 없는 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함경남도 이원에서 태어난 권씨는 1975년 일본 도쿄화랑에서 열린 '한국 5인의 작가-다섯가지의 흰색'전에 참가해 한국의 모노크롬 회화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12월 22일까지. (02)720-1020 이성구 미술전문기자 s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