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하는 엽사를 떠올리면 두 가지 느낌이 든다. 총으로 야생동물을 잡는 잔인한 사람이라는 것과 보통 사람들이 접하지 못하는 색다른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그것. 총기소지가 일반화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호기심이 더 발동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피상적으로만 알려졌던 수렵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일찍이 사냥문화가 발달한 영국의 엽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엽총은 상하쌍대(위아래 총구 2개)나 수평쌍대다. 5연발이나 8연발 총도 있지만 굳이 두 발밖에 쏠 수 없는 쌍대 엽총을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수렵인들이 지켜야할 도리(엽도.獵道)를 중시하는 엽사들은 땅위의 짐승은 잡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 날짐승을 사냥할 경우에도 여러 발을 쏘는 것은 엽도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한다. 한 발은 날짐승을 하늘로 솟아오르게 하려는 목적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한 발은 떨어뜨리기 위해 발사한다는 게 쌍대 엽총을 사용하는 이유다. 한국사냥견협회 고진채(57) 회장은 "엽도를 중시하는 일본의 엽사들은 꿩 사냥을 하면서 까투리(암컷)는 잡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사냥에 앞서 기도를 올리는 등 예를 갖추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사냥을 해온 엽사들은 많이 잡는 데 연연하지 않는다. 함께 사냥하는 동안 자식처럼 정든 사냥견과 함께 무공해 자연 속을 한없이 거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사냥은 사냥견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사냥견은 사냥감에 따라 종류도 많고 좋은 품종의 경우 가격이 수천만 원을 웃도는 등 다양하다. 에스피인터내셔날 정재경(48) 사장은 "꿩이나 비둘기 등을 사냥하는 데는 주로 포인터를 사용한다"며 "포인터는 겁이 많기 때문에 사냥감을 직접 잡지는 못하고 위치를 알려주기만 하는 특성이 있다"고 전했다. 포인터는 꿩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멈춘 채 꼬리만 흔든다. 그러한 개의 행동을 일컬어 "포인트"한다고 한다. 엽사는 포인트하고 있는 개에게 신호를 줘 꿩을 날아가게 한 후 총으로 쏘는 것이다. 스스로 잡으려 달려들지 않기 때문에 날짐승 사냥에는 포인터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풍산개나 진돗개 등 맹견은 멧돼지 등 사나운 짐승을 잡는데 쓰인다. 거친 사냥감을 제압해야 하는 특성에 따른 것이다. 세타는 멧돼지보다 덜 거친 노루 등을 사냥하는 데 사용한다. 몸집이 작은 브레타니는 다른 개와 달리 물속에 들어가기를 저어하지 않는 습성이 있어 오리사냥을 하는 데 많이 쓰인다고 한다. 수렵현장에서 사냥견들이 사냥감을 발견하고 포인트를 해줘도 엽사가 잡지 못하는 일이 잦아지면 사냥견들이 더 이상 수색을 하지 않으려 한다. 총을 잘 쏘지 못하는"땡포"는 이처럼 사냥견에게 망신을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에 클레이사격장 등에서 충분히 연습을 한 후 현장에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요즘처럼 총기를 경찰서에 묶어둬야 하는 법이 시행되기 이전에는 멧돼지 사냥을 나가 며칠씩 산 속에 머무는 날도 많았다. 멧돼지를 쫓으면서 사냥견과 함께 노숙을 하다보면 서로 껴안은 채 잠을 잔다고 한다. 개와 사람이 체온을 나누면서 두터운 정을 쌓기도 했던 사냥의 멋은 요즘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광경이 됐다. 글=정경진(객원기자) 취재협조=대한수렵관리협회(02-972-60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