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등하는 부동산 가격과 대내외 경제불안 요인들 사이에서 한국은행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금리를 올리고 싶어도 못 올리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금융통화위원회가 12일 콜금리 목표를 동결(연 4.25%)하면서도 발표문에는 향후 금리인상(적극 대응) 방침을 넣은 것도 이런 고민을 보여준다. 박승 한은 총재는 "최근 몇 달간 한은이 정상적인 정책 결정을 할 수 없도록 손발이 묶여 있었다"며 스스로 실기(失機)했음을 인정했다. 한은은 그러면서도 부동산 '거품'이 붕괴될 가능성을 강도 높게 경고했다. 미국 경제불안, 미.이라크 전쟁우려, 수해 피해 등 불안요인이 많지만 부동산 거품을 방치할 경우 자칫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금리인상 요인은 넘친다 국내 요인만 고려한다면 지금 당장 금리를 대폭 인상해야 할 상황이라는게 한은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한은이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은행권의 가계대출 추이. 지난 5월 콜금리를 연 4.25%로 인상한 뒤 증가세가 한풀 꺾였던 가계대출 증가액이 8월 들어 다시 전달보다 1조원 이상 불어난 5조4천억원에 달했다. 이런 가계대출 가운데 줄잡아 40조원 가량이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됐다는게 한은의 분석이다. 주택값 상승이 세계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한국은 '대출 붐'에 의해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얘기다. 미국 영국 호주 이탈리아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주택가격은 지난 1년간 10% 안팎의 상승률을 보였다. 반면 국내 아파트값 상승률은 지난해부터 올 8월까지 서울 강남 56%, 강북 33%, 6대 광역시 28%에 달했다. 물가가 상당한 상승압력을 받고 있다는 점도 콜금리 인상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그동안 환율 덕에 물가가 안정됐지만 수해로 농산물값이 뛰고 부동산과 국제유가도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 못 올리는 이유 박 총재는 "대외 여건이 안정돼 있었다면 진작에 금리를 올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금리와 유동성 과잉이 부동산 투기에 일조했음을 박 총재도 인정했다. 그동안 한은의 발목을 잡은 요인은 △미국 일본 등 세계경기 불안 △미.이라크간 분쟁 △국내 증시침체 △수해 피해 등이다. 당장 미.이라크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마당에 금리 인상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박 총재는 이달엔 인상요인과 동결요인이 5 대 5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하반기 들어 경상수지 흑자폭이 급감하는 추세이고 내년에는 적자로 반전될 가능성이 큰 점도 부담스러운 측면이다. 박 총재는 "한은의 기본 임무는 경제안정"이라며 "물가 안정은 물론 부동산.주식 등 자산가치와 국제수지도 안정돼야 비로소 경제가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대책이 효과를 낼지도 지켜봐야 한다. 금리인상이 자칫 3년째 유지돼 온 저금리기조의 포기로 비쳐질 가능성도 고려해야 할 대목이다. ◆ 향후 전망 한은은 부동산 국제수지 등 불안요인에 대해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즉 콜금리를 인상하고 시중에 지나치게 풀린 유동성도 거둬들이겠다는 것. 하지만 금리를 올렸다가 자칫 이라크 사태 등 대외여건이 급격히 악화되면 그 책임을 고스란히 져야 한다는 고민도 안고 있다. 또 연말 대선을 앞둬 칼(금리인상)을 빼들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한은은 대외여건이 악화되지 않을 경우 10월께 금리를 소폭 인상하고 총액대출 한도(11조6천억원)를 9.11 테러이전 수준(9조6천억원)으로 2조원 가량 줄일 전망이다. 그러나 국내외 연구기관들 사이엔 한은이 연내 금리인상이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