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는 가라, 터프 걸이 뜨는 걸...' 가을 여성의류 매장에 야성미가 넘치고 있다. 지난 여름까지 매장을 휩쓸었던 공주풍 패션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엔 터프한 느낌의 가죽 옷이 걸렸다. 한마디로 여성의류 매장에 야성의 바람이 불고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 2층 '에고이스트' 매장. 숍 마스터 오선희씨(29)는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가죽이나 스웨이드(속칭 쎄무) 소재의 히피풍 옷이 패션 리더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귀띔한다. 듣고 보니 같은 층 숙녀의류 매장 마네킹들은 대부분 가죽이나 스웨이드 재킷에 가죽 바지, 진 바지 등으로 코디하고 손님을 맞고 있다. 오씨는 이같은 패션 흐름을 '페미큘린 룩'이라고 말한다. 페미큘린(femiculine)은 '여성적'이란 뜻의 페미닌(feminine)과 '남성적'이란 의미의 머스큘린(masculine)을 합친 신조어. 단순히 남성과 여성을 뒤섞은 '중성'을 가리키는게 아니다. 각각의 특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조화로운 패션 흐름을 의미한다. 지난 봄과 여름 패션이 공주풍의 우아하고 깜찍한 여성미를 드러내는데 중점을 뒀다면 올 가을 패션은 강한 여성상을 창조하는데 무게중심이 옮겨져 있는 셈이다. 여기에 대비되는 것은 '꽃미남'으로 표현되는 여린 남성상이 남성 패션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 적어도 패션 분야에서는 성의 역전현상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오씨가 자신있게 추천하는 코디는 가죽이나 스웨이드 재킷에 진 또는 스판 바지를 걸치는 것. 소품인 핸드백도 스웨이드가 안성맞춤이다. 그의 가죽 옷 예찬은 단순하다. "계절적으로 가죽 옷은 가을이 제격이에요. 가죽은 여름엔 덥고 겨울에는 너무 차갑게 보이기 때문이죠. 가죽 옷의 장점이라면 터프하고 카리스마가 엿보이는 점이죠.힘이 있어 보여 더욱 맘에 드는 것 같아요. 강한 여성들의 도전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도 가죽이 제격이에요." 오씨 역시 도전적인 커리어우먼이다. 매장관리 총책임자인 숍 마스터이면서 에고이스트 자사 모델이기도 하다. 남다른 패션 감각은 이런 경력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 그가 코디한 단품들은 일단 수백명 단골고객의 구매리스트 맨위에 오르게 된다. 사진을 촬영하던 날도 그가 신은 롱부츠는 촬영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객 손으로 넘어갔다. 오씨가 관리하는 에고이스트 매장의 주 타깃은 30세 전후의 직장여성과 미시 주부이다. 오씨는 "요즘엔 직장여성들보다는 미시 주부들이 더 과감하게 자신을 연출한다"고 들려준다. 직장여성들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용감한 패션'을 연출하기가 부담스럽지만 미시족들은 눈치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씨는 "몸에 착 달라붙는 스판 바지에 스웨이드 부츠를 신고 그 위에 헐렁한 가죽 재킷과 술이 달린 핸드백을 걸치거나, 반대로 타이트한 재킷 아래 빈티지풍의 나팔바지를 받쳐 입는 코디가 멋쟁이 미시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들려줬다. 그는 지금 히피를 꿈꾸는 용감한 여성고객들과 가을을 얘기하고 있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