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갈비를 양념하던 중 맛있게 됐길래 가깝게 지내는 이웃집에 조금 드리기로 했다. 들고 가는 길에 애들 아빠가 농담 삼아 "웬 상납?" 하길래 "상납이라니,베푸는 거지" 했더니 중학생이던 딸아이가 "베풀긴요,나누는 거지요" 했다. 망치로 한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 일 이후 나는 머리 속에서 "베푼다"는 단어를 지웠다.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이 되면 평소 고마운 분,자주 만나진 못해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이들께 작은 정성이라도 전하고 싶다. 문제는 "뭘 보내느냐"이다. 내용이 알차되 받는 사람이 부담스럽지 않고,때마침 필요한 물건이어서 꾸러미를 풀어본 뒤 기쁘고,기왕이면 오래 기억할 수 있는 것이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선물 품목으론 보통 먹거리,넥타이 스카프 지갑 등 잡화,화장품이나 액세서리,티셔츠 등 의류소품,커피잔이나 접시같은 그릇,비누 치약 샴푸같은 일용품,상품권(문화 도서,구두,백화점 상품권)등을 떠올리게 된다. 연령에 상관없이 누구나 쓸 수 있는 문화상품권이나 도서상품권도 괜찮지만 그래도 선물이란 정성스런 포장에 담긴 게 제격이다 싶고 명절엔 뭐니뭐니 해도 먹을 게 최고라는 생각에 식품류를 고르는 수가 많다. 선물용 식품 꾸러미엔 갈비를 비롯한 정육,굴비나 옥돔같은 생선,명란 창란젓 등 젓갈,햄 소시지류,잣과 호두를 포함한 건과류,말린 버섯류,과일,한과,식용유 참기름 세트 등 여러가지가 있다. 먹거리,그중에서도 특히 고기 생선 과일 등 규격화되지 않은 농 수 축산물을 백화점에서 구입하는 건 품질에 대한 믿음과 깔끔한 포장,정확한 배달 체제를 믿기 때문이다. 개인은 물론 단체에서 선물을 보낼 때 백화점에 맡기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실제 백화점의 선물보따리는 예쁘고 화려하다. 그러나 정작 꾸러미를 풀어보면 실망스러울 때도 많다. 무엇보다 갈비와 한과,과일 세트가 그렇다. 대형백화점 갈비세트의 경우 엄청난 가격에도 불구하고 내용물을 보면 뼈가 너무 크거나 기름투성이어서 다듬는 동안 고기 양이 확 줄거나 너무 질기고 맛이 없는 등 품질이 엉망인 수가 있다. 뼈와 기름을 빼면 전체 무게의 30%나 될까. 대형백화점의 경우 가격은 비슷하지만 품질은 다르다. "L백화점`과 "H백화점`제품 사이엔 상당한 차이가 났다. 한과는 더하다. 한과세트는 전통식품이라는 사실때문에 명절 때면 널리 쓰이는데 윗쪽만 그럴 듯하게 만들고 아래쪽엔 대강 채워놓는가 하면 약과는 딱딱하고 강정은 말라서 푸석푸석하기 일쑤다. 맛이 없다 보니 아이들은 물론 어른조차 잘 안먹게 된다. 추석이나 설에 맞춰 한꺼번에 대량 생산하는데다 대부분 선물용으로 포장판매하는 탓인 듯한데 이런 식이 계속되면 과연 한과의 명맥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쪽이든 제조업체와 유통업체 모두 선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는 풍토를 이용하는 게 아닐까 싶어 입맛이 쓰다. 더욱이 이번 추석엔 정육과 생선 세트 모두 엄청나게 올랐다. 가격대에 맞추느라 판매단위가 줄어든 대신 포장은 한결 세련됐다. 포장이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건 틀림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진짜 중요한 건 내용물이다.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