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간 미국과 밀월관계를 유지해온 러시아가 올 여름 이라크와 이란,북한 등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세나라에 손을 뻗치자 그 속셈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넷판은 11일 이 때문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냉전시대의 대결국면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비쳐지기도 하지만 그가 작년 `9.11 테러'이후 채택한 친서방노선을 이탈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다만 대외정책의 최우선과제인 `돈벌이'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라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그로서는 러시아의 경제회복에 필요하다면 미국이 싫어하는나라는 물론 세계 어느 곳에서든 돈되는 사업을 벌일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분석이다. 푸틴은 그러면서도 러시아 경제번영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과의 사이에 금이 가지 않도록 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고 저널은 말했다. 푸틴은 지난 여름 해외 공관장들을 모스크바로 불러 새로운 외교지침을 시달하는 자리에서 경제문제를 최우선시하고 "러시아에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상대라면누구든 가리지 말고 끌어들이라고 지시했다. 이후 곧바로 러시아는 이란의 신규 원전건설계약을 따내고 싶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을 블라디보스토크에 초청해 만찬을 함께 하면서 아시아-유럽 화물운송을 위한 철도 연결방안을 논의했다.또 이라크와는 5개년 무역협정을 체결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이러한 러시아의 행보에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격노했고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테러국들"과의 관계를 과시하는 듯한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고 러시아에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알렉산더 버시보우 모스크바 주재 미 대사는 푸틴이 친서방노선에서 후퇴하고 있다는 언론의 추측은 근거가 희박하다며 최근에 나타난 미-러시아간 이견은`9.11 테러' 이후 양국의 협력무드를 깰 정도는 아니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푸틴 대통령 치하의 러시아에서는 경제가 `길라잡이'로 인식되고 있는 만큼 최대 교역.투자 파트너인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러시아의 미래 경제번영에 이라크나 이란,북한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해 러시아가 공개적으로는 반대하면서도 정작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에 반대키 위한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애널리스트들은 분석했다. 러시아의 최대관심사는 옛 소련시절 이라크에 제공한 무기 대금을 회수하고 원유개발계약을 이행토록 하는 것이라고 이들은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이라크 반체제 단체 `이라크 국민회의'의 워싱턴 사무소 대표 인티파드 칸바르가 전한 이야기는 러시아의 입장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칸바르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 관리들의 요청으로 열린 회의에서 한 러시아 외교관이 `러시아의 대 이라크 거래는 경제적 관계를 바탕으로 한 것일 뿐 사담 후세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는 점을 강조하려 애썼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 외무부는 이라크 반체제 단체와의 접촉사실을 확인했지만 구체적인 내용 공개는 거부했다고 저널은 전했다. 러시아에서는 모스크바 주재 이라크 대사관이 지난달 러시아와의 400억달러 규모 무역협정 체결 방침을 발표한 것도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를 틀어지게 하려는 이라크 정부의 기도에 따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러시아는 이란에 총 50억달러 규모의 새 원전 5개소를 건설키로 하는 계약을 따내면 좋겠다는 뜻을 올 여름 밝혔으나 미국이 반발하자 한발 물러섰다. 이는 바로 푸틴이 단지 돈벌이를 위해 미국과의 관계 단절도 불사하지는 않을것임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