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패션디자이너들이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한 벌에 수백만원짜리 옷을 만들던 이들이 일반인도 큰 부담없이 사 입을 수 있는 옷을 홈쇼핑 채널에 선보이고 있다. 기업과 손잡고 자기네 이름을 단 상품을 내놓기도 한다. LG홈쇼핑은 최근 패션상품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 국내 정상급 디자이너들의 모임인 SFAA(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와 손잡고 만든 'SFAA'브랜드 의류로 첫 방송 3시간 만에 15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 국내 하이패션계를 주도하는 진태옥 루비나 설윤형 등 SFAA 리더들이 이름값을 한 셈이다. 이에 앞서 CJ39쇼핑은 지난해 박춘무 이정우 등 차세대 디자이너들과 손잡고 '이다'란 브랜드의 옷을 내놓아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패션디자이너들과 홈쇼핑업체간 제휴는 양쪽의 이해가 맞물린 결과물이다. 디자이너 진태옥씨는 "디자이너들이 대중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탐색해야 할 시기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수입 브랜드의 거센 공세에 맞서 새로운 유통 채널로 급부상한 홈쇼핑을 '매스마켓'으로 발을 넓히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홈쇼핑업체들은 정상급 디자이너들의 패션상품을 판매함으로써 '중·저가 상품 유통 채널'이라는 이미지를 희석시키려 하고 있다. 대중시장을 겨냥한 디자이너들의 '각개전투'도 활발하다. 특히 앙드레김의 행보가 눈길을 끈다. 앙드레김은 지난해 한불화장품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딴 화장품을 내놓았고 올 초에는 '앙드레김 엔카르타'라는 란제리를 라이선스로 선보였다. 그는 앞으로 스포츠웨어 시계 홈컬렉션 주얼리 등으로 범위를 넓히겠다고 말한다. 디자이너 홍은주씨는 유아용품업체 아가방과 손잡고 '아가방 에뜨와'라는 백화점용 브랜드를 런칭했고 아가방으로부터 해외 컬렉션에 나갈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디자이너 장광효씨는 '카루소'라는 홈쇼핑 브랜드를 만들어 팔고 있다. 김정아 하용수씨와 이신우씨는 홈쇼핑용 언더웨어 '르메이유'와 '피델리아'를 내놓아 호평받고 있다. 해외에서도 이같은 움직임이 활발하다. 삼성패션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할인점의 디자이너 자체브랜드(PB)가 활성화되는 추세다. 푸마와 질샌더,아디다스와 요지 야마모토 등 디자이너와 스포츠 업계와의 제휴도 두드러진다. 관건은 품질이다. '유명 디자이너'의 이름값을 하는 상품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는가가 초점이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한편 브랜드 가치와 위상을 지켜야 하는 과제도 있다. 패션마케팅 회사 케이스의 민현미 실장은 "디자이너들의 뒷심과 업체들의 적절한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