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문을 펴보기가 무서워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회 지도층의 비리의혹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다보면 처음에는 분노가 치밀고,그 다음엔 맥이 빠지며,종국에는 아예 신문읽기가 무서워진다는 얘기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두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으로 만신창이가 돼 있고,국무총리 지명자는 전국적인 부동산 투기 의혹과 특혜를 동원해 거액의 은행 대출을 받은 사실 등으로 곤경에 몰려 있다. 사상 첫 여성 총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전직 대학총장 역시 부동산 투기의혹에 밀려 국회에서 인준을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어디 이들 뿐일까. 사회 지도층을 자처하는 인사들 중에서 각종 투기와 비리의혹에 휩싸인 채 '낙마'한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과거 정권에서 장관으로 임명됐던 대학교수 출신의 여성계 지도자가 내뱉은 말은 국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줬다. 전국 요지에 부동산을 '사재기'한 사실이 드러나 혹독한 여론의 비판을 받자 "투기 좀 한 게 무슨 큰 죕니까"라며 '정면돌파'를 시도했던 것이다. 90년대 초반 국회의장을 지낸 어떤 사람은 시가 1백30억원짜리 빌딩(93년 시가기준)과 75가구의 주택을 거느리고서는 서민들을 상대로 '전·월세 장사'를 한 사실이 들통나 아예 정계를 떠나야 했다. 잠시 대학교수를 한 이외에는 평생 정치 밖에 한 일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해서 그 많은 재산을 모았는지는 끝내 해명되지 않았다. '윗물'이 이러니 사회 전반의 도덕성은 '당연히' 만신창이 지경에 이르러 있다. 최근 국세청의 서울 강남지역 투기실태 조사 결과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푼의 소득도 신고하지 않은 50대의 무직 부녀자가 이미 움켜쥐고 있던 9채의 아파트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16채의 재건축 대상 아파트를 더 사모은 사실은 한 편의 '소극(笑劇)'이라고 치자. 50세 현직 변호사와 45세 여의사 부부의 엽기적 탈세·투기 행태는 국민들로 하여금 경악을 넘어선 허탈감에 젖어들게 했다. 최근 3년 사이에 아파트 10채를 매집한 이들 부부가 세무당국에 신고한 이 기간 중 연간 평균소득은 단돈 8백25만원에 불과했다. 이들이 살고 있다는 서울 대치동의 80평형대 아파트는 한달 관리비만으로도 50만∼60만원은 족히 물어야 한다. 부부가 1년 동안 벌었다는 소득은 아파트 관리비를 내기에도 빠듯하다는 얘기다. 하루 세끼 밥은 먹지도 않고 살았는지,자녀들 교육은 무슨 돈으로 시키고 있는지 조금만 따져봐도 설명되지 않을 의문이 줄을 잇는다. 국민들의 분노는 '도대체 국세청은 지금껏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울분과 탄식으로 이어진다. 서울 강남에 대형 가족 빌딩타운을 조성했다는 의혹에 한마디 해명도 없이 해외 도피생활을 하고 있는 전직 국세청장의 행태와 '구멍난 세무관리'를 자연스레 연결짓는 국민들을 누가 탓할 것인가. 갈 데까지 간 우리 사회 지도층의 비윤리적 행태를 보며 구미(歐美) 선진국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를 떠올리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5백30억달러의 재산을 가진 소프트웨어 황제 빌 게이츠가 자선재단을 통해 2백억달러가 넘는 돈을 기부했지만,미국 정부는 훈장을 주는 대신 '반독점 혐의'로 법정에 세울 만큼 '가진 자'들을 혹독하게 검증하고 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둘째 아들 앤드루 왕자는 1982년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 때 목숨을 걸고 전투헬리콥터 조종사로 참여하는 모범을 보였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들에게서도 이런 사례가 줄을 이어 '신문읽기가 기다려지는' 세상이 올 수는 없는 걸까.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