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선수 발라크가 한 골을 넣는 순간 아찔했다. 안돼.안돼! 소리치다 곧 정신을 차리고 제발,동점골 한 골만이라도 넣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그러나 끝내 지고 말았다. 비록 결승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그 누구도 실망하는 기색은 없었다. 실망은커녕 더 큰 박수를 보냈다. 어떤 찬사도 박수도 아깝지 않았고 잘 싸웠다, 장하다는 말로도 모자랄 것 같았다. 쉬운 싸움에서 이긴 것보다 어려운 싸움에서 최선을 다한 태극전사들이 더 자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세계의 강호를 물리치고 4강에 들다니! 기적 같은 일이라 꿈인 듯 생시인 듯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경기가 끝나고도 재방송하는 축구를 보고 또 본다. 볼 때마다 눈물도 찔끔 난다. '기쁨이 극(極)에 달한다'는 말이 오늘처럼 실감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를 세계에 확실히 알려준 태극전사들이 한없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눈물나고,그들을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준 히딩크 감독이 고마워서 또 눈물난다. 96세에 대학생이 된 아버지가 축하하는 자식들 앞에서 '눈물이란 왜 나오는 건지….이걸 연구해서 논문이나 써야지'했다는 얘기가 문득 떠올랐다. 48년 만에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4강에 오른 태극전사들 앞에서 '눈물이란 왜 나오는 건지….이걸 연구해서 축구론이나 써야지'란 말을 나도 하고 싶어졌다. 언제 우리가 이처럼 한마음 한뜻이 되었으며,누가 우리에게 이처럼 큰 희망을 주었던가. 그런데 태극전사들이 희망과 감동을 함께 안겨 주었다. 아니,그들이 희망과 감동 그 자체였다. 대한민국이 내 조국이라는 것을,우리 모두 한민족 한자손이란 것을 일깨워 줬고,한마음 한정신이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도 알게 해주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열패감에 싸여있던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주었고,자존심도 회복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6월 한달에 마치 천년을 산 것 같은 이 환희와 희열을 무엇에다 비할 수 있을까. 감동할 일이 없어 우리들의 눈에는 눈물도 없었는데,작은 축구공 하나가 4천7백만 국민을 감동시켰으니,세상의 권력 중에 '감동'보다 큰 권력이 또 있을까. 월드컵이 열리기 전에는 대(大)한민국이나,한강,한민족 같은 말들이 솔직히 못 마땅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전 국민 모두가 하나같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한 마음으로 응원했다. 누가 시킨다고 그 뜨거운 뙤약볕에 하루종일 서 있을 수 있을까. 하던 일 다 그만두고 오직 나라를 위해 응원할 민족이 얼마나 될까.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비로소 우리나라를 대한민국이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축구의 '변방'으로 설움받던 나라가 세계의 중심이 되고,월드컵의 개최국이 되다니 꿈같은 일이다. 이렇게 꿈같은,이렇게 기적 같은 일을 그냥 기록으로만 남겨둘 수는 없다. 민족 발전의 전기로 삼아 축구의 역사를 다시 쓰듯 모든 분야를 다시 쓰자.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교육이든 축구만큼,아니면 축구의 반만큼이라도 쓸 수 있다면 축구처럼 한국인의 긍지와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보라! 간절한 마음은 하늘도 감동하지 않는가. 4강에 오른 축구를 하느님도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다. 대한사람 대한으로 이 감격, 이 마음을 길이 보전하고 싶다. 지금처럼 오래도록 우리 가슴이 일편단심이었으면 좋겠다. 꽃이 만발한들 붉은 악마들의 물결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누가 거리의 응원놀이로만 볼 수 있을까. 이제 어른들은 '젊은 것들이…'라는 말은 쓰지 말자.이기적이고 버릇없고 애국심도 없다는 그 젊은이들이 바로 승리를 이끌어낸 주역의 하나다. 건전한 젊음의 분출구인 거리응원을 그들 삶의 한 장으로 보아주자.어른들이 그토록 오랜 시간을 거리에서 열렬히 응원할 수 있을까. 아무튼 이번 기회에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켰고,어느 나라도 함부로 볼 수 없는 단결력을 보여주었다. 어떤 어려운 일도 축구에서 보여준 힘으로 밀고 나간다면 좋은 해법이 될 것 같다. 애국심도 한마음도 우리들의 자존심이다. 자존심이 자만심이 되지 않도록 오늘의 이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