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바우두'가 드디어 해냈다. 한국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라는 명성이 서러울 정도로 침묵하던 설기현(23)이 결정적인 순간에 역사적인 '한방'을 터뜨렸다. 18일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후반 43분 터져나온 설기현의 황금같은 왼발 동점골은 화려한 킬러의 부활을 알리는 징표였다. 이날 설기현의 속시원한 동점골은 골 결정력이 부족하다는 여론 속에서도 그토록 그를 뚝심있게 믿어준 거스 히딩크 감독에 대한 완벽한 보답이기도 했다. 설기현은 그동안 히딩크 감독이 가장 신뢰하는 최전방 공격수로 평가돼왔다. 히딩크 감독은 황선홍 안정환 차두리 등을 설기현과 함께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낙점했지만 힘을 내세우는 유럽의 수비수와 맞서 자신의 전술적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선수라는 점에서 유난히 설기현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설기현은 월드컵 개막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도 킬러구실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허리 허벅지 등의 잔부상에 시달린데다 소속팀내 주전 경쟁에서 한발 밀리며 경기감각을 잃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의 믿음은 끈질겼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듯이 설기현은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지난달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장장 15개월여만에 멋진 헤딩 역전골을 성공시키며 처음으로 킬러의 부활을 예고했다. 그러나 월드컵대회가 시작된 후에는 오히려 실망스런 모습을 보인 게 사실이다. 힘있는 드리블과 적극적인 몸싸움으로 공간을 확보하며 열심히 득점찬스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번번이 골이 빗나갔기 때문. 그런데 한.일월드컵에서 3경기 연속 출장하고도 계속 절호의 찬스를 무산시키며 히딩크의 애간장을 태웠던 그가 8강의 문턱에서 막강 우승후보 이탈리아를 상대로 천금같은 동점골을 뽑아냈다. 이보다 더 확실한 '보은'의 한방이 어디 있으랴. 설기현이 축구에 입문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주문진중학교와 강릉상고를 거쳐 광운대에 입학한 그는 대학졸업 후 곧바로 유럽으로 진출,세계적인 스트라이커로서의 도약을 모색했다. 2000년 8월 벨기에 1부 리그 앤트워프에 진출,단번에 주전자리를 꿰차는 등 맹활약했고 지난해 여름 벨기에 최고 명문인 안더레흐트로 이적했다. 그는 유연한 드리블과 가무잡잡한 피부, 큰 키 등 여러모로 브라질의 천재 골잡이 히바우두를 닮았다고 해서 '설바우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