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온통 월드컵 열기로 가득찬 느낌이다. 그토록 갈망하던 월드컵 첫승을,그것도 우리가 주최한 대회에서 따냈으니 그 흥분과 감동은 가히 폭발적이라 해도 좋을 듯싶다. 이런 분위기에서 오늘 오후 열리는 한국과 미국의 일전은 마치 국가의 명운이라도 걸린 것처럼 온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집중돼 있다. 한-미전은 16강 진출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합인 만큼 국민의 응원열기도 극도로 고조돼 경기장 안팎은 물론,전국적으로 수십만명이 길거리응원을 펼칠 것이라고 한다. 승리를 얻어내는데 국민들의 열성적 응원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축구경기에서 응원을 '12번째 선수'라고 하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러나 응원은 말 그대로 격려와 성원일 뿐이다. 응원이 도를 넘어 상대방 선수를 위협하거나 정치적 목적 등으로 오염된다면 스포츠 본래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 된다. 더구나 주최국의 자제력을 잃은 응원은 자칫 볼성사나운 '텃세'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인터넷 등에는 동계올림픽의 이른바 '오노 사건'등을 상기시키며 반미감정을 부추기는 글이 오르고 대학가와 일부 시민단체들도 반미응원과 반미시위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심히 염려스런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주한 미대사관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오후 휴무를 결정하고,농담이라지만 주한 미국대사가 "차라리 미국팀이 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물론 한국사회 일각에 미국에 대한 곱지않은 시선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고 그 원인 또한 대부분 미국이 제공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하지만 축구경기를 반미투쟁의 장으로 변질시키는 것은 양국 어느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월드컵은 '축구전쟁'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다. 화합과 축제의 마당에서 노골적으로 국가적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온당치도,현명치도 못한 일이다. 정부도 불상사를 우려해 경비인원을 늘리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당국의 노력에 앞서 국민들 스스로가 냉철하고 성숙된 시민의식을 발휘하는 것이 옳다. 그런 의미에서 '붉은 악마'회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성이 배제된 건전한 응원을 다짐한 것은 우리를 안도케 한다. 전세계 60억이 지켜보는 잔치마당에서 국가이미지를 높이는 일은 축구경기의 승리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 한-미전을 응원하는 모든 국민들이 상기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