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시 쌍령동 영은미술관이 9일부터 6월 6일까지 마련하는 '동방의 숨결'전은 시기적으로 안성맞춤의 기획전이라고 할 수 있다. 출품작가는 도자기의 김기철(69), 회화의 방혜자(65), 설치의 양주혜(47)씨이다. 타악연주자 박동욱(63)씨는 개막일에 소리예술로 전시대열에 합류한다. 이들은 동양예술의 심연에 깔린 정서와 사상을 퍼올리고자 한다. 때마침 월드컵과 부처님오신날을 끼고 있어 의미는 더 돋보인다. 이번 전시는 우주(天)와 자연(地)과 사람(人)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조화를 이룬다는 동양사상에 바탕을 둔다. 작가들이 일상에서 도(道)를 실천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왔다는 점도 공통된다. 만물이 궁극으로 하나(범아일여ㆍ梵我一如)이고, 세상 보는 눈은 결국 마음에 있다(유심론ㆍ唯心論)는 불교정신과도 맥이 닿는다. 김씨는 농사하며 도자기를 굽는 도예가로, 자연과 깊이 교감하며 작업하고 있다. 성형할 때 흔히 쓰이는 물레 따위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손으로만 작품을 빚어낸다. 무심과 달관으로 외피 속에 숨은 존재의 아름다운 실체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기계적 인공을 거부한 터라 그의 작품에는 화려함 대신 소박하면서도 친근한 맛이 살아 있다. 봉오리를 반쯤 맺은 작은 연못의 연꽃, 바람에 가볍게 살랑거리는 나뭇잎, 폴짝 뛰어오른 개구리를 달고 있는 연잎이 그렇다. 도자기의 안쪽은 백자로, 바깥쪽은 흙의 색깔로 표현한 것도 이채롭다. 방씨는 40여년 동안 프랑스 파리에 살며 동양적 정체성과 자아의 목소리에 침잠해왔다. 출품작은 '생명의 빛' '흙의 소리' '생명의 숨결' '자연의 숨결' 등. 생식과 기공으로 생활하는 그는 흙, 자연채색 등을 이용해 자연과 인간, 우주가 하나라는 인식을 빛의 세계로 나타낸다. 그의 그림들은 타악연주자 박동욱씨의 소리작업에 힘입어 내면과 생명의 빛을 더한다. 박씨 역시 명상을 통해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온 예술인. 봄바람과 꽃향기, 빗방울, 풀벌레 소리를 흙과 자연 소재의 타악기로 담아냄으로써 전시작의 감흥을 고조시킨다. 양씨의 설치작업은 다분히 불교적이다. 표현방법도 직설적이어서 부처님오신날과 썩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그는 6m 높이의 천장에서 길게 늘어뜨려진 전구들의 주변을 관객이 따라 돌게 해 자아를 깨달아 완성의 길로 가는 과정을 설치작업으로 구현한다. 보기에 따라 탑돌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의 법계도(法界圖)는 '우주만유로서 천지만물 허공법계가 다 부처 아님이 없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작가는 흔들리는 전구를 통해 유위와 무위로 범벅이 된 일체의 현상을 뚫고 참된 법계로 들어가는 방법을 보여준다. 분별심을 떠나면 모든 것이 바로 나이고, 내가 모든 것이 되는 부처의 마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시 관람 후에는 10만평의 너른 땅에 펼쳐진 미술관의 야외풍경을 감상하고 산림욕까지 즐기는 시간이 덤으로 기다리고 있다. ☎ 031-761-0137.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