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보호무역의 기수였고 또 자유무역의 주창자이기도 했다" 처칠 전임 총리였던 체임벌린에 대한 영국인들의 비아냥이다. 스페인 내란에 대한 불간섭 방침,무솔리니의 에티오피아 점령 인정,체코슬로바키아의 상당부분을 히틀러에게 넘겨준 뮌헨협정 체결 등으로 파시스트들에게 끝없이 양보만 거듭한 실패한 총리였고 보면 수준 이하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의 보호무역에서 자유무역으로의 반전이 '왔다갔다한 소신'이고 그렇기 때문에 비난받아야 할 일인지는 의문이다. 무역정책은 그 나라 산업발전 단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특히 그러하다. 정치인이 말을 바꾸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말이 달라지고 철학이 바뀌었다고 그 정치인이 모두 욕을 먹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현재 독일에서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으로 꼽히는 녹색당 당수 J 피셔 외무장관만 해도 그렇다. 그는 격렬했던 서독내 베트남전 반대데모의 주동자였고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무정부주의자(그들 스스로는 바쿠닌 등 종래의 Anarchist와 구분 Spontaneist로 불렀다)의 핵심축이었던 사람이다. 또 각국에 투옥된 친팔레스타인 범죄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를 습격, 유혈 인질소동을 벌인 테러범들과의 긴밀한 관계로 법정에 서야 했던 내력도 갖고 있다. 그런 그가 9·11 뉴욕테러를 규탄하고 미국의 반테러전쟁 선언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나이가 들면 누구나 온건해지게 마련이라고 해석해야 할까. 아니면 한 마리 야생마도 제도권에 진입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게 되면 달라지게 되는 법이라고 풀이해야 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민주당 경선에서 선두주자로 나선 노무현씨 때문이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 '재벌 주식이나 토지를 노동자 농민에게 분배하는 정책'이라는 말은 물론이고.이른바 메이저신문 국유화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가 문제다. 왜 발언 당시에는 별 파문이 없었는지를 우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현장에는 기자도 함께 있었거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여러 사람이 함께 자리한 파업현장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가 그런 말을 했을 때 별 파문이 없었던 까닭은 따지고 보면 노씨가 당시만 하더라도 별로 대수롭지 않았기 때문이고,또 말같지도 않은 소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주의 실험이 참담한 실패로 결론난 것은 이미 오래다. 소련의 붕괴,중국의 자본주의화,이미 비교대상이 아닌 남북한 경제력 격차 등은 하나같이 이를 입증하는 사례다. 영국 노동당 등이 이른바 제3의 길이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국유화 등 전통적인 사회당적 정책 포기를 분명히 하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보기에 따라서는 노씨의 발언이 '현장'에서 별 파문을 낳지않은 것 자체가 일반인들의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즉각 반작용이 나왔을 것이라고 보는게 옳다.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끝나버린 전시대적 사회주의 실험을 다시 시작할 우려는 없다고 믿기 때문에 노씨의 발언현장은 조용했다고 본다. 경선과정에서 색깔있는 발언이 나올 수 있는 것도 따지고보면 우리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그런 잔 바람에 영향을 받지않을 정도로 성숙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보수와 진보의 정당구도로 가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대선과정에서 어느 수준의 색깔있는 말이 얼마나 쏟아질지는 점치기 어렵다. 그러나 한가지 예측할 수 있는 건 다음 대통령도 그 취임초기 경제정책이 상당히 반기업적일 것이고 시간이 갈수록 온건해질 것이란 점이다.부정축재자 처리,9·27조치,토지 공개념,빅딜 등 역대 대통령들의 초기 정책이 다 그랬다는 점을 되새겨 보면 그런 예측이 가능하다.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게 되면 과격한 방법은 금물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은 자명하다. 이는 선거과정에서 지나치게 나가면 집권 후에도 두고두고 부담을 안게 될 것이란 얘기로도 통한다. /본사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