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다이쇼천황(大正天皇.1879-1926) 시대 황실 통치 사료인 「다이쇼실록」(大正實錄)이 지난 29일부터 궁내청 쇼로후(書陵部)에서 공개되기 시작했다. 「다이쇼실록」은 쇼로부 전신인 궁내성 즈쇼로(圖書寮) 편수과 주도로 다이쇼가 죽은 이듬해인 1927년 편찬에 착수해 1937년에 본문 85책, 연표 4책, 색인 7책,정오표 1책의 총197책(6천820)쪽으로 완성된 편년체 사서이다. 천황에 얽힌 나날의 동정과 일본 황실 최고 통치자료 등이 집대성된 이 실록은그동안 공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가 일본 국내 정보공개법에 의거해 공개 청구를 요청하고 궁내청 '쇼료부 소장 자료의 이용규칙'에 따라 열람이 가능하게 됐다. 이번에 공개된 실록은 전체가 아니라 1912년 7월30일 다이쇼가 천황에 공식 취임한 날에서 시작해 1914년 6월29일까지 약 2년치 분량 8책이다. 하지만 이나마 공개된 실록도 온전치 못해 29일자 일본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수상 등이 천황에게 보고한 내용이나 황실이 내린 돈 액수 등 미묘한 대목에는모두 141곳에 걸쳐 검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에 대해 일본에서는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이런 행위는 역사에 대한 모독이라고 강력히 반발하면서 완전한 공개를 촉구하고 나서는 등 '불완전한 공개'를 둘러싼파문이 확대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이번 일부 실록 공개로 새로운 사실들도 밝혀지고 있다. 예컨대 다이쇼(大正)이라는 연호의 경우 종전에는 그 출전이 중국 고전들인 「춘추」(春秋)라는 주장과 「역경」(易經.주역)이라는 설이 팽팽히 맞섰으나 「역경」에서 유래한 것임이 밝혀졌다. 1912년 7월30일 조에 따르면 새로운 천황 즉위에 즈음해 후보로 제출된 연호는다이쇼를 포함해 '천흥'(天興)과 '흥화'(興化)의 3개였다. 일본 황실은 추밀 고문관의 심의를 거쳐 이중 「역경」에서 따온 '다이쇼'를 선택했음이 밝혀졌다. 또한 다이쇼 천황은 생전에 1천300수 이상의 한시를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그가 메이지의 황태자로 있을 때 전의였던 엘윈 벨츠 박사의 죽음을 애도한 시를 포함해 새로운 작품이 다수 발견됐다. 불완전하게 공개된 이번 「다이쇼실록」은 조선 식민통치 초반기로서 이와 관련되는 내용도 많을 것이나 이 또한 '삭제 검열'에 걸렸을 가능성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은 조선 식민통치와 관련된 자료가 많을 것으로 보여 이에 대한 국내 학계의 관심이 요망된다고 일본근현대사가 박환무씨는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