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인재들의 창조성을 길러주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미국 듀크대 후쿠아 경영대학원의 더글러스 T 브리든 원장(52)은 최근 서울대 경영대 학장실에서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서울대와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협의하기 위해 방한한 브리든 원장은 한국 대학들이 지금까지 지식전달에만 급급해 창조적인 교육을 등한시했다며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면 대학의 창조성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의 대학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조건으로 '글로벌화'를 제시했다. 지구촌시대에 한국 대학들이 글로벌 사회에 편입하지 못하고 한국 내에만 안주하면 낙오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 대담 = 조재길 < 기자 > ] ----------------------------------------------------------------- -한국 대학들이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조언을 해주신다면. "대학 경쟁력을 높이는 첫째 요건은 바로 세계화입니다. 대학의 세계화는 학생과 교수들의 공동노력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교수들은 저명한 학술지에 영향력 있는 논문을 적극 발표해야 합니다. 한국 교수들이 최근 논문게재수를 늘려가고 있습니다만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훌륭한 논문이 많이 나오면 한국 대학들도 자연스럽게 세계 엘리트 학계로 편입될 것입니다. 상아탑에선 후진양성 기능이 기본입니다만 연구활동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대학 및 학생들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한국학생들은 대단한 공부벌레입니다. 한국 중국 인도 학생들이 대체로 우수하지만 특히 한국학생들의 성적은 전체평균을 훨씬 상회합니다. 석사뿐만 아니라 박사과정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경쟁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대학이 학생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길러주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대학은 단순한 지식공장이 아니라 학생들이 '더불어' 연구하고 '창조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장소여야 합니다" -한국 대학들이 앞으로 가장 역점을 둬야 할 교육이 있다면. "창조성 교육입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학생들이 부족한 부분도 바로 이것입니다. 아시아에선 '순종'에 대한 미덕이 아직도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순종적 사고는 창조성을 훼손합니다. 창조적인 사람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가는 도전자입니다. 도전하고 모험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혁신은 있을 수 없습니다. 창조성이 적극 발휘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합니다. 경제 및 금융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논문들이 처음에 모두 비웃음을 샀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조성이 특히 강조되는 분야는. "지난 20년간 정보기술(IT)은 가장 흥미롭고 혁신적인 분야였습니다. 컴퓨터 전문가들이 그들의 창조적인 아이디어 하나로 세계를 변화시켜 왔던 것이죠.창조성은 금융분야에서도 적극 도입돼 왔습니다.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조직행동론'은 금융과 인간행동의 '엉뚱한' 결합입니다. 경제학과 의학, 공학과 기업론 등 학제간 연구가 활발해지는 추세도 모두 창조성의 발로라 할 수 있겠습니다" -후쿠아 경영대학원이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경영대학원이 된 이유가 있다면. "후쿠아 경영대학원은 역사가 32년에 불과한 젊은 대학원입니다. 하버드나 스탠퍼드 등이 1백년 가까운 세월을 거쳐 성장한 점과 비교해 보면 놀랄만한 성장을 거듭한 셈입니다. 비즈니스위크가 최근 미국내 5위 경영대학원으로 선정했습니다만, '최고경영자(executive) MBA' 과정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자부합니다. 후쿠아 경영대학원은 첨단기법들을 동원해 강의를 진행하는 동시에 1 대 1로 직접 가르치는 '도제식' 방법도 동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place & space' 기법이라고 부릅니다. 학생들이 일정기간 미국 대학원에서 수업을 들은 뒤 각국 고향으로 돌아가 인터넷을 통해 나머지 수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같은 '원거리 강의'가 가능케 된 것은 인터넷 덕분이죠" -학생 선발시 가장 먼저 고려하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우선 학부과정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진행합니다. 경영학 수학 공학 경제학 등의 전공을 선호하지만 최근에는 인문학 분야의 학생들도 환영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을 공부한 학생들은 언어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언어는 비즈니스에 성공하는 가장 큰 요건입니다. 또 모든 지원자를 직접 인터뷰하는게 우리의 원칙입니다. 한국에서는 올초 1백20여명의 지원자를 인터뷰했는데 모두 졸업생들로 구성된 한국내 원우회가 맡아서 진행했습니다. 졸업생들은 모두 지원자에 대해 강력한 추천권을 행사합니다. 현재 후쿠아 경영대학원에서 수학하고 있는 한국학생들은 모두 22명이며 이 추세대로라면 한국학생 수는 앞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서울대와 체결한 교환학생 프로그램은 어떤 것입니까. "서울대와 듀크대는 석사 박사 교수 등의 상호교환 프로그램을 운용키로 합의했습니다. 특히 박사과정 학생들을 교환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것입니다. 앞으로는 교수간 공동연구 등 상호협력을 대폭 확대해 나갈 방침입니다. 외국대학으로는 서울대와 가장 큰 협력관계를 맺고 있죠" -미국 경제상황이 개선되고 있습니다만 고용사정은 그다지 밝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후쿠아 경영대학원 졸업예정자들은 평균 5∼7개의 채용 제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경제가 좋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고용시장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죠. 상당수 학생들이 MBA를 따고도 심각한 취업난을 겪고 있습니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크고 알찬 기업들에서 일하고 있는 졸업생들과 취업알선 기관들을 초빙해 취업난을 덜어주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엔론사태로 미국이 시끄럽습니다. 금융전문가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엔론파산의 직접적인 이유는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업실적에 목을 매는 월가 투자가들의 과잉대응이 더 설득력있는 파산 원인입니다. 투자가들은 엔론의 실적이 기존 예상치에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나자 한꺼번에 엔론주식을 대거 매도했습니다. 너도 나도 엔론주식을 팔아치우자 결국 무너지고 말았죠. 월가의 투자가들은 지속적인 수익만을 원합니다. 이것이 기업 재무담당자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재무담당자는 주가관리 차원에서 분식회계를 하도록 항상 압력을 받고 있는 셈이죠. 엔론은 선물 옵션 스와프 등 다양한 금융 파생상품을 취급했습니다. 이들 거래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재무담당자가 주가부양을 위해 조작할 수 있는 여지도 생깁니다" -미국 금융당국이 회계법인에 대한 제재를 골자로 법률제정을 서두르고 있습니다만. "또 하나의 법률을 만드는 것은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회계문제는 기업경영 차원에서 처리해야지 정부가 나서면 안됩니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시키라는 여론에 따라 지난 1933년 관련법률이 제정됐지만 지금은 유명무실해지지 않았습니까. 시티그룹은 양쪽 업무를 모두 다루고 있는 대표적인 회사죠.문제가 생길 때마다 새 법을 만들어 사태를 해결하려는 사고방식부터 버려야 합니다. 오히려 객관적으로 재무보고서를 작성하는 기업에 보상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게 좋습니다" -엔론의 회계감사를 맡았던 앤더슨이 신뢰성에 치명타를 입고 존폐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앤더슨의 장래가 궁금합니다. "앤더슨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뛰어난 인재를 많이 확보하고 있습니다. 최근 고객사들이 연달아 이탈하는 등 동요하고 있지만 오래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앤더슨이 독자생존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적인 사업분야의 분리 매각을 통해 생존방안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road@hankyung.com >